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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5 교회를 안 다니는것이 성경적인가요?
  2. 2011/02/05 목회준비하는 전도사입니다..
  3. 2011/02/04 [만민 교인의질문]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4. 2011/02/04 말씀을 대언 할 수 있는 자격자는 과연 누구인가?
  5. 2011/02/02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은 적이있습니다.
  6. 2011/02/02 이단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7. 2011/02/01 요한의 계시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속지말자 !
  8. 2011/01/31 죄를 미워하되 멀리하진않습니다.. (2)
  9. 2011/01/31 예수 믿으면 의인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죄인이라?
  10. 2011/01/31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11. 2011/01/30 유산 상속시 십일조하는건가요?
  12. 2011/01/30 거룩함이 무너져 내렸다…
  13. 2011/01/30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목사님들 고견 듣고 싶습니다.
  14. 2011/01/29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알아야할 진실...불편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15. 2011/01/29 스펄전의 대해서 질문합니다
  16. 2011/01/29 장로교만 분열이 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2011/01/29 사람이 죽으면(기독교)
  18. 2011/01/29 지금시대에 하나님이 직접
  19. 2011/01/28 [특별기고] 비성경적인 국내 주요교파의 목사제도 1~5
  20. 2011/01/28 참종교 찾기가 가능한가?
  21. 2011/01/28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22. 2011/01/28 주의 강림에 대하여.....
  23. 2011/01/27 재질문 들어갑니다. 개신교분들
  24. 2011/01/27 교회에 가봤자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생각때문에
  25. 2011/01/27 독실한 기독교인인데요.. 자위에 대한 질문
  26. 2011/01/26 예수는 태양신 호루스의 표절작이다. (2)
  27. 2011/01/26 냉정한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28. 2011/01/25 구원에 관해서???
  29. 2011/01/25 이교도도 구원되나요? (1)
  30. 2011/01/25 아담과 하와의 자손은 근친상간인가요? (1)




   질 문  

 

가끔 교회서의 모습이 혼란스러워.. 고민하는 분들을 봅니다
저도 그럴때가 있구요

그리고 그런분들이 상담글 올리면.. 상당수의 댓글중... 교회 다니지 마세요~ 라는 글을 보는데요

교회를 안 다니는것이 성경적인지요?
물론 교회 안 다니고 자기 혼자 예배드린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교회라는 건물이 교회냐? 목사가 교회냐? 뭐... 이렇게 나오실런지 모르지만..

저도 질문하는겁니다..
교회를 안 다니고 혼자 집에서 신앙생활 하는것이 성경적인지요?
아니면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그 공동체에서 신앙생활 하는것이 성경적인지요?



   답 변  

 

먼저 귀한 질문을 나눠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교회"에 대한 개념과 본질적인 인식에서 조차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와

너무나 다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교회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해도 동문서답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질문자님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저 역시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사도 바울은 원래부터 유대인으로 태어 났습니다.

로마 시민권자로서 당시의 유명하다는 학문을 섭렵하였고

특히 가말리엘학파에서 공부한 걸출한 엘리트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자요 헬라교육에도 뛰어난 지식인이며 지성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은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았으며 

얼마나 열심이 특심(이 부분은 구약의 엘리야가 사용한 단어로군요^^) 하였는가 하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서 투옥 시키고자 대제사장에게 공문서까지 받아 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의 성인 다마스크스까지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무리들을 잡으려고 달려간 사람

바울로  변하기 이전의 사울이라는 열혈청년이었습니다. 

그랬던 사울이라는 청년에게 부할하신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만나주셨습니다. 

이게 왠 은혜랍니까? 

 

도무지 말도 안되는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죽이려고 달려오던 사울을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구원이 이해가 안갔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훼방하던 원수였던 사울을 용서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것일 뿐입니다. 

 

사울이 원한것도 아니었으며

아볼로가 바란것도 아니었으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소원한것도 아니었습니다. 

또 누가 있을까요? 

아나니아라는 형제가 원함도 아니었습니다.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원한것도 아니었으며

빌립이 바란것도 아니었으며

베드로와 안드레가 소망한것도 아니었습니다.

 

무화과 나무아래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며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했었던 나다나엘의 원함도 아니었습니다.

로마 군병에게 십자가를 지고 채찍에 맞으며 한걸음 걷다가 쓰러지던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짊어졌던 구레네 시몬의 원함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은혜가 너무도 기가 막힌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시고도 그동안 얼마나 길이 참으셨는가를 생각하자

바울은 그저 눈물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것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며

이제 나는 살던지 죽던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밖엔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바울이 얼마나 받은바 은혜가 깊고 놃고 넓었던지

눈만 뜨면 감사요 감격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 바울이 이제 주님의 편지로서 만나는 동족 유대인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사실 바울과 유대인들이 언제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율법과 복음이었습니다.

 

그전에 바울이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을 전혀 알지 못했을때의 기준은

"율법" 의 열심이 최고의 믿음이었으며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안타까움에 동족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변론하며 열심으로 설득하려 한것이

"율법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의로워 질 수 없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의로워진다는것!

이신득의---믿음으로 의로워짐 을 역설한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혜가 아니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수 없습니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당시 살아 계실때

유대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아무리 설명하고 가르쳤어도 도무지 믿지 못했었는데

하물며 사도 바울이 뛰어난들 진리 자체이신 예수와 감히 비길 수도 없지요.

 

이것은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며 오직 여호와의 신, 즉 성령으로만 가능한것입니다.

결국은 바울이 안타깝지만 유대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들고 달려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의 뜻이었다는것을 알았고 인정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가면서 깨달은 것이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으로만 가능하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것이 없구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값자기 왜 교회 이야기를 하다가 바울로 빠지는가 의아하시겠지만...

 

교회에 대하여도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와 이미 다른길로 가면서도 그것이 마치 교회의 전부요 절대적인것인양 

믿으라고 강요하는 작금의 현대 교단 조직의 교회안에서는

결코 성령의 감동하심에 의하여 빼 내심을 입은...

다른 말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구원얻은 성도들)과는 전혀...

하늘과 땅 만큼 이나 다르다는것을 말하고자 하는것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말합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인은 같을까요? 

유대인들과 예수를 믿는 자들과 같을까요?

 

예수께서 물론 유대인으로 나셨고 분명 구약의 성경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유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심으로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들과의 혈통이나 족보나 민족적인 어떤것도 

그리스도의 피로 형제 자매가 된 하나님의 친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말씀 요한복음1장12절말씀,

 

 9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
10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이 섬기는 성전이 교회라고 누가 그럽니까?

 

오늘날 교파와 교단과 노회를 성경이 어디 어느곳에서 인정하는지요?

목사라는 직분은 성경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시는지요?

 

성경에 어느곳에서 베드로를 교황으로 세웠다고 기록한 곳이 있는지요?

주님이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그 부분을 들어서 지금 개신교회가 마치

자기들의 교단이나 교파를 정당하다고 주장하는데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 성경적으로 살고 목회한다는 분들의 생각과 의식속에서조차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교회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서 어찌 바른 복음으로 살수가 있다는 것인지요? 

지금 기성 교단 교파 교회에서 주장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16장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르되, 어떤 이들은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3-18]<흠정역>

 

여기서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봅시다.

 

로마 카톨릭의 주장은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주님이 인정하셨다고 지금까지도 박박 우겨대고 있습니다.

궁금하신분들은  http://www.cainchon.or.kr/web/community/faq.aspx 천주교 인천교구 상담

교리게시판을 확인하세요.

 

거기 분명히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6장도 잘 보세요.
마태16장에서는
"무엇이던지, 네가 푼것은 풀어 주고, 묶어둔것은 묵인채 있으리라, 하시면서

지옥문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지요?^^
이 말씀들은 주님이 "직접"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베드로 신앙고백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은 또한 베드로에게, "하늘의 열쇄"도 직접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하늘의 열쇠 등등)들도, 주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다가" 주셨단 말인가요?

^^주고 받는 것은 인격적인 행위입니다.^^
마태 16장 은 주님은 베드로와 "직접 대화"하시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다가 교회를 세우시니^^,
하늘의 열쇄를 주시니^^, 지옥문이 이기지 못하느니^^, 하신적이 없습니다.^^
(마태 16.15-20을 잘보세요)

이해를 돕기위해서,

하느님이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람"을 인류의 아버지로 선택하실때에 "이름을 새로 지어" 주셨어요.
"아브라함"이라고.
베드로에게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기 전의 베드로의 이름은 시몬이었지요?
창세기 17장과 같이,
시몬 바르요나에게 새 이름(베드로=반석)을 지어 주시고,
"베드로(반석)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했어요.]

 

제가 지금 카토릭과 한판 싸우자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싸울 힘도 실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바르게 알자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교회에 대하여 천주교와 개신교역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너희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특별하게 택한 제자들은 과연 어떻게 알고 있는가가 궁금한것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대표로 고백한것입니다.

베드로 혼자만 고백한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전부의 고백입니다.

그 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얼마나 좋아하십니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살아계신 아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신 분이 사람이 아니랍니다.

학문이 아니라 철학이 아니라 지식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입니다.

 

성령께서 열어서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심이 아니라

예수가 곧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위에나 베드로의 고백위에 혹은 반석이라는 베드로의 이름위에 교회를 세우심이 아닙니다. 

 

다시한번 말씀을 확인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것을 믿는자들이며 믿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주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하신 분이 성령입니다.

그 교회가 언제 구체적으로 세워집니까?

지금 베드로를 칭찬하시던 그 때입니까? 

 

사도행전1,2장에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자 모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마음으로 모여서 주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에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온 집안에 가득하였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듯이 성령으로 충만해졌는데 그들이 앉아 있던 다락방입니다.

그들이 앉아있던 온 집안에 가득하게 성령이 내려 오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닙니다.

유대인의 회당이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성령을 통해 알고 믿게 된 자들이 모여있는 그곳입니다.

 

오늘날 그곳이 어디일까요?

 

가정일수도 있으며 공터일 수도 있으며 지하 창고일 수도 있으며 비좁은 컨테이너 박스일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병원 중환자실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찾지 않는 병실에 홀로 누워서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양식삼아서 묵상하는 그가 있는곳입니다.

온 몸이 꼼작도 할 수 없어서

눈만 깜빡 거리며 눈으로 컴을 바라보는 이에게는 바로 그곳이 성령이 임하시는 곳입니다.

발가락 하나로 오랜 시간을 들여서 그림을 그리는 그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주가 곧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는 순간에

성령이 그곳에 가득 임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이냐고요?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 성경은 당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심령속에 예수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임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믿어지십니까?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당신의 주홍같은 죄가 진홍같이 붉은 죄가 깨끗하게 

씻겨 졌다는 사실이 믿어 지십니까?

 

사람들이 당신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어느 교회를 나가는가요?

당신은 교회가 무엇인가 알고 있습니까?

교회를 소개해 주세요?

도대체 교회가 어떤곳입니까? 

 

짏문자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고 혼자 집에서 신앙생활 하는것이 성경적인지요?
아니면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그 공동체에서 신앙생활 하는것이 성경적인지요?  

 

왜 제가 바울사도의 율법이냐 복음이냐를 예를 들었는지 전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나가거나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삶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신앙입니다.

 

교회를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아직도 다르게 그동안 들었고 배웠기에

그런 질문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곧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믿어지는 그가 바로 교회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거기 예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그의 말씀대로가 절대 기준인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유전이나 사상이나 교리가 기준인가입니다. 

 

그래서 말씀이(성경으로) 없으면 거기 생명이 없는것입니다.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들이 보낸 편지를 그대로 믿고 따르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아무리 지키고 가르치고 암송을 해도

성령의 비췸이 없으니까 율법으로만 사는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이란 율법에 의하여 하라와 하지마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것입니다.

더 이상 장소와 제도나 어떤 규범안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날과 달과 절기에 매여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 동족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갔는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적으로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시는 질문자님의 마음이 귀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와 늘 항상 동행하는가가 중요하지요.

 

건강한 교회를 찾아야 하는가 라고 하십니다만...

원래 주님이 세우신 진정한 교회.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는 처음부터 건강합니다. 

개혁의 대상도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개혁의 대상일 수가 있을까요? 

 

종교적인 제도와 시스템과 구조를 고치는것이 개혁이랄 수 있을까요? 

 

성경적인 신앙생활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고 사는 삶의 모든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믿는자들을 성령이 이끄시고 보호하시고 은혜주시고 책임져 주시는것이 곧 신앙의 삶입니다.

 

질문자님의 귀한 나눔에 부족한 저의 긴 글이 다소 무례하겠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2009/07/02.ⓒ사랑그리고편지.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 문  

 

목회준비하는 전도사입니다..

강해집등 신학에 관련된책 저렴하게 삽니다... 000권

안산이며 0**-***0-***0 연락주셔요





   답 변  

 

성경이면 충분한것을...

강해집이나 신학서적이 왜 필요할까요?

 

하기는 그 심정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기보다는 신학자들 이름 석자 외우는 것에 치중하였으니..

아니면 교회 운영하는 법이나 교수들의 목회 경험담으로 시간 다 보냈으니...

그 맘 이해합니다.

 

목회를 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가 "복음" 을 먹고 복음을 누리며 복음으로 가득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목사를 세운적도 없고 당연히 어떤 성직자나 신학교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님이 성경에 충실했다면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사도행전의 증언들에 집중하세요

 

사도들과 복음을 듣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살았는가를...

 

스데반이나 빌립 그리고 아나니아라는  성령이 충만한 제자
이디오피아 네시 이달리야 백부장 고넬료...

이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당시 종교전문가들인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과 달랐지요

 

예수님의 복음으로 스스로 확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말씀에 착념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라면 여전히 예수와 상관 없는 현대교회의 잘나가시는 유명 목사들의 전철을 따라갈 것이니...

 

나중에 예수님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겠구나.... 하시기 전에...

 

무엇이되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얼굴도 모르고 그런 처지이지만 님보다 먼저 그 길을 갈 뻔 했던 선배로서의 조언입니다.

 

머...

이 조언이 불쾌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2011/02/04 - 말씀을 대언 할 수 있는 자격자는 과연 누구인가?
2011/02/02 - 이단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2011/01/29 - 장로교만 분열이 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11/01/28 - [특별기고] 비성경적인 국내 주요교파의 목사제도 1~5
2011/01/28 -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 문  

 

누가복음 18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또 한글킹성경에도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은 한국에만해도 어마어마하고 여기저기에 수많은 교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판국인데
왜 위의 구절에서는 예수님이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냐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지금 현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중에도 예수님으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면 구원받을 사람들이 적다는 의미도 될텐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것일까요?


...중략

   답 변  

 

무슨 질문글이 그리도 길면서 횅설수설하는지요? 

말씀을 함부로 곡해하면 큰일 난답니다^^

 

지금도 큰 교단과 세력을 잡은걸루 알고 있는데 아직도 양에 차지 않는가 봅니다.

족한줄 알아야 더 큰 화를 면할것을 ...

 

말씀을 봅시다.

 

누가복음 18장 <흠정역>

 1.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고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녀가 그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 대적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소서, 하되

 4. 그가 한동안 들어 주지 아니하였으나 나중에 속으로 이르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괴롭게 하므로 내가 그녀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항상 와서 나를 지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비록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

곧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향하여 오랫동안 참으실지라도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믿는 자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비유입니다.

여기서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이 등장합니다.

재미난 것은 한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예수께선 말씀하십니다.

그냥 재판관이 아니라 불의하다는 것이죠.

불의한 재판관임을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자" 라고 합니다.

이 재판관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 도무지 안하무인이며 독불장군이다 그런 뜻입니다.

한 마디로 인정 사정 없는 무자비한 재판관이다 그런 뜻입니다.

정의나 공평이나 기본적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재판관입니다. 

 

한마디로 싸가지 없는 악한 자라는 뜻이며
이런자가 권력을 쥐고 있는 불의한 세상이다 그런뜻이죠.

이런 시대와 이런 재판관에게 공정한 판결을 기대할수는 없겠지요?

예수님의 의도를 잘 파악하셔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그 의도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약하고 쇠외된 자들의 대명사가 있습니다.

 

고와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과부는 어디에 기댈 곳이 없으며 든든한 배경도 없는 가장 약한 자의 상징입니다.

이 시대의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며 당시의 제자들입니다.

이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하소연 해봤자 해결될 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기도로 밀어 부쳐야 한다느니 강청기도 해야한다는둥...

무조건 쎄게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고 하는 설교도 웃기지만...

마치 자기들 교회만 참이고 무슨 거룩한 제단입네 하는것도 우습답니다.

또한 자기들 교회의 제단 어쩌고 하면서 말씀을 받았네 어쩌네 하는 것도 거짓말이죠.


질문자는 이렇게 광고하는군요 ^^

<이 성구는 개척 때부터 본 제단에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제단이 장차 어떻게 일어나 빛을 발하게 될지를 아셨기에 이 말씀을 주심으로 본 제단을 향하신 뜻과 섭리를 나타내셨지요. 그리고 본 제단은 이 말씀대로 개척 이후 지금까지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달려왔습니다. 2011년도에는 이 말씀이 더욱 확실히 성취될 것입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께서 “내 종아, 내가 깨우쳐 준 말씀들을 빨리 책자로 펼쳐서 전 세계로 보내라. 오늘날은 정말 믿음 가진 자가 적으니라.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라. 믿는다고 하면서 불법만 행하고 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믿지도 않으면서 믿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느니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해 만민중앙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어두워진 세상 가운데서 정녕 빛이 너무나 필요한 때에 일어나 빛을 발하는 제단이 필요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신 섭리 가운데 ‘만민중앙교회’를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님의 송구영신예배 말씀 중 발췌>

참으로 대담하게도 거짓을 진짜인양 말하는 담대함이란...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분명히 사도들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더 이상 사도권은 끝났고 당시 사도들이 행하던

기적과 이적들도 더 이상 없습니다. 다만 간절한 기도와 믿음 안에서 개인적인 체험과 치유의 일들은 간혹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이며 당사자의 믿음을 위한 은혜의 한 방편일 뿐이지 마치 그러한 기적과 권능이라고 하면서

어떤 한 사람을 부각시키거나 사도들 이상으로 높인다면 스스로가 거짓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성직자도 세운적이 없고

어떤 교단이나 목사를 세운적도 없거늘 개신교회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교주가 되고 교단 세우고 목사니 총회장이니 하는것이 웃기는 것인줄 알야야할것을..

그것도 모르는자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서 뭇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으니...

그러면서 세계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부흥회랍시고 하면서 생 쑈들을 하고 있으니...

 

진정한 성령의 권능은 그런 얍삽한 병고침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복음" 임을 모르는가?

요한복음 16장

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8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

12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너희에게(제자들에게= 거듭난 성도들에게) 보이시리라>
*자기만 유일하게 보았다느니 들었다느니 하는 자들의 정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보는 시대가 아니지요? 이젠 각종 번역으로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기만 특별하게 음성을 들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자들에게 속지 마세요^^

아직도 무슨 운동이니 능력이니 불받아라 하는 것으로 신앙을 확인하려는 불쌍한 이들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 예수님을 믿으라.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가?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6절 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확인해 봐야합니다.

 

 4. 그가 한동안 들어 주지 아니하였으나 나중에 속으로 이르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괴롭게 하므로 내가 그녀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항상 와서 나를 지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이 과부의 청원을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삶이 불의한 재판관에게조차 없신 여김을 당하지 않는 삶이었다는 것이죠.

간단하게 무시할 만큼 그런 과부가 아니라

불의한 재판관조차 인정할 만한 삶이며 믿음이었다 그런 말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재판관이지만 이 과부는 다른 사람과 틀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매일 찾아와도 귀찮아고 쫒아내지 못한것입니다.

만일 이 과부가 삶도 엉망이고 누가 봐도 형편 없는 인생이었다면? 

불의한 재판관 앞에 나갈 수도 없이 문전 박대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이 과부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그 청원이 뭐냐하면 "원수를 갚아달라는 것" 입니다.

과부의 원수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이어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비록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

곧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향하여 오랫동안 참으실지라도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곧,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 입니다.

이 부르짖는 것이 단지 기도하는 것을 말할 까요?

그렇다면 선택 받은 자들이 밤낮 부르짖어서 원수 갚아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되면 이 기도는 참소하는 기도가 되겠지요?

참소는 사탄의 전매 특허입니다.

항상 믿는자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속이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밤낮 부르짖어서 원수 갚아달라고 참소를 해요?

 

말도 안되지요?

 

여기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본질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예를 들어서 비유하시는 것은 원수 갚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만한 삶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한 재판관에 속했습니다. 정의와 공평이 실종된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부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본향을 향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존제들입니다.

원수를 갚아 달라고 참소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다르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1.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 입니다.

이들은 성령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이여

 

우리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미혹에서 돌아서야 삽니다.


2011/02/04 - 말씀을 대언 할 수 있는 자격자는 과연 누구인가?
2011/02/02 - 이단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2011/02/01 - 요한의 계시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속지말자 !
2011/01/28 - 참종교 찾기가 가능한가?
2010/06/10 -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2010/06/09 - 그렇게도 분별 할 수 없읍니까?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 문  

 

말씀을 대언 하는 자??

예수님의 말씀을 대언 하는 자가   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꼭 대언 하는 자라고 지목한다면 과연 누구인가?

지금은 누구를 지목하는 시대가 아니다. 결코 지목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꼭 지목 되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로서는 이렇게 말한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 뿐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목 받은 사람들로서 지상 최고의 선물과 지상 최고의 과제를 부여 받은 지상 최고의 사람들이다.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은 함께 하신다고 하셨으며, 복음 전파를 명령 하셨으며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그 외에는 국물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누가 하늘의 대언자란 말인가?  성령 외에는 더 이상의 확고한 직인이 없는 것이다.

내말 틀린 점에 대한 내용은 인는가요? 





   답 변  

 

좋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를 대언자라고도 번역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대언자)들은 말씀을 해석하는자들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대신 전하는 자일 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당시에 재한적이고 특별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애언자들은 성령의 임하심을 입은 특별한 자들이며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들은 말씀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대언자들이 개별적으로 조직을 만들거나 단체를 만들어서

교주 비스므리하게 한 적이 없었지요.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상식이 있는 독자들은 아실것입니다.

 

 

이들 대언하는 자들은 부유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주 믿음이 순수하고 성령이 함께하는 제사장 이외에는
대부분 왕궁 안에 있었으며

왕의 곁에서 엄청난 부와 명성과 권세를 누렸습니다.

이들에게 당시의 대언하는 자들은 눈에 가시같은 존제입니다.

물론 거짓 대언하는 자들도 참 많았습니다.

이들은 불의한 삯을 탐하던 발람처럼
이러한 부정한 재물에 눈먼 제사장들과 연합하여서

왕의 신임을 얻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결코 보낸자들이 아닙니다.

가라지들입니다. 마귀가 심은 가라지들입니다.

알곡을 능히 가리울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창대한 자들입니다.

유사품들이죠.

모조품들이 진품보다 수천 수만배가 많은것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어디 이들 뿐일까요?

이들의 미혹을 좋아라 하며 대언자로 알고 따르는 어리석은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요?

들을 귀가있는 자들은 들을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침례자 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대언자)입니다.

요한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가리키는것) 입니다.

앞서 가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 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증거하십니다.

 

마태복음 11:13  모든 대언자와 율법은 요한까지 대언하였나니

 

이 말씀은 이제 더이상 신약 시대에 구약의 대언자들은 필요가 없어졌다는 선언입니다.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이 가리키신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오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께서 친히 구약의 예언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이 가리켰던 것의 실체이신 예수님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로 구약시대에 주신 것들인데...

그 실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것이고

더 이상 대언자들의 역할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들이 구약의 대언자들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 증인들이 누구냐 하면?

 

사도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본 자들입니다.

부활의 목격자들이 증인들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증인들이 누구냐 하면?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따라 걷는 주의 증인들로서 당시 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이들은 오직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증거의 말씀(신약 성경과 서신서)만을
최고의 권위요 기준이요
교리요 삶의 법으로 믿는 자들입니다.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이렇게 성령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들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결코 국가 교회 체제였던 로마 카톨릭에 속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또한 루터와 칼빈에 의하여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교회제도에도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한 그러한 조직과 제도권에 있었지만
순수한 신약 성경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이끄심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그들로부터 빠져 나온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조직이나 제도나 형식과 사람이 만든 교리에 의하여 소속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추종자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총회장도 없으며

어떤 성직제도 역시 인정되지 않을 뿐 관심도 없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신약 성경만이 최고의 신앙과 믿음의 기준이며 원리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늘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이 삶이요

매일 매일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이상 특별한 사도권도 인정 되지않습니다.

초기 예수님의 사도들이 다 순교하였을 때부터 이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증거된

신약 성경(사 복음서와 서신서)이 충분하게 초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사용되어졌고

인정되어 졌기에 어떤 종교적인 회의(예: 니케아 회의, 얌니아 회의등...)에서 성경 목록을 정경화한 것과 상관 없이

이미 성령의 보증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 이 증거되었기에 사도들 이후에는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구약의 대언하는 기능을 부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을 따라 살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로서

하나님의 영(성령)을 받았기에 누구든지 대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2장

 5. 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느니라.
 11.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확증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2장

 4. 참으로 사람들에게는 거부당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선정 받은 돌

곧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
 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6. 그런즉 성경 기록에도, 보라, 내가 선택한 보배로운 으뜸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당황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이 들어 있느니라.
 7. 그러므로 그분께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로우시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거부한 그 돌이 되셨느니라. 바로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되 순종하지 아니하여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 그리되었나니 그들은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졌느니라.


 9.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

 

 

 

 9.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건만...

 

도대체 누가 감히 대언자라고 지껄이는가?

그리고 그런자를 총회장이라고 숭배하는 자들은 성경을 읽기는 하는 것인가?

단지 교주가 가르친 엉터리 교리에 아멘만 하는 그들이 과연
성령을 따라 인도함을 받는 자들인가?

 

기존 개신교 목사들과 교리 논쟁하자고 하는것이 무슨 자랑질인가?

도친 개친이며 도토리 키재기 하는  꼴이 아닌가?

 

개신교단에게 이단 사이비로 공격 당하는 것이 그렇게도 억울한가?

만일 그들이 진리에 서 있다면?

성령을 따라 확고한 믿음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면?

개신교와 논쟁해서 이기면 뭐할 것이며

그들과 맞짱 떠서 함 봐라 너희들이나 우리나 비슷한데 사이좋게 지내자 하는 제스쳐인가?

 

왜 너그덜만 사기치면서 우리보고 사기친다고 하냐  뭐, 이런 것인가?

 

성경대로 살다가 기득권자들에게 박해 당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가?

 

이들은 도나티스트들이며 아나 밥티스트들이며 왈덴시안들이며
골짜기의 사람들이며 피 흘린 발자취를 따라
걷다가
당시 모든 사람들로 부터 이단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잠잠하게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죽기를
두려워 하지 않은
참된 교회들이며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 열매를 보고 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진정 이단 사이비 소리 듣는 것이 억울한가?

 

차라리 그대들이 진정 복음과 예수님을 위하여 살기로 결단하였다면
이단 소리 듣는것이 대순가?

복음만을 바로 전하라

특별한 사람을 교주로 인정하는 것 부터가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모르는가?

성경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든지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하였다.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누구든지 새롭고도 산 길이 되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직자를 통해서 가야 한다는 그들은 거짓말 장이들이다.
 

지금 무슨 증거의 장막이니 총회장이니 하는 것도 엉터리며
가짜임을 스스로가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귀한 보혈로 죄들을 사하시고
율법을 따라 드리던 제사법들을 폐하시고
그 몸을 단번에 드려서 각종 의문에 따라 행하던 구약의 절기들을 끝 마치셨건만...

 

아직도 안식일 법을 지켜야 한다거나 유월절을 행해야 한다는
얼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스러운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기에... 

질문자의 글에 답이 있어서 그것으로 답변을 마무리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목 받은 사람들로서

지상 최고의 선물과 지상 최고의 과제를 부여 받은 지상 최고의 사람들이다.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은 함께 하신다고 하셨으며, 

복음 전파를 명령 하셨으며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그 외에는 국물도 없는 현실이다.

 

길게 작성하여 미안합니다. 사실은 질문자의 질문속에 분명한 답변이 있습니다.

좋은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2011/02/02 - 이단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2011/02/01 - 요한의 계시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속지말자 !
2011/01/31 -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2011/01/29 - 장로교만 분열이 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11/01/28 - [특별기고] 비성경적인 국내 주요교파의 목사제도 1~5
2011/01/28 - 참종교 찾기가 가능한가?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 문  

 
안녕하세요.

 

현재 나이 42세입니다.

어릴때 기도를 하다가 응답을 받은 일이있는데, 그것이 정말 하느님에게서 온 응답인지,과학으로 증명할 수 잇는 정신적인 문제인지가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국민학교 5학년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평범하고 온순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어느날부터인가 이상한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요즘 강박증에대해서 관심을 갖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강박증의 "침투사고"같습니다.

온갖 불경스러운 생각이 어린 저를 괴롭힐만큼 많이 들었습니다.

"신에대한 모욕적인 생각 (하느님 개새끼) 처럼이요....그리고 가족이라던가 선생님 그리고 나 자신에대한 불경스러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를 다니지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아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제게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무섭습니다. 나중에 커서 하느님 제자가 될테니 구원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 순간....하늘에서 무언가 환한 빛덩어리가 떨어지는것처럼 느껴졋습니다. 그리고는 그 빛덩어리가 제 정수리에 맞았고, 온 몸과 마음이 새하얀 백지상태처럼 깨끗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갓난 아이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은 그렇게 일주일정도 지속되었습니다. 예전에 들던 불경스러운 생각은 그 순간 이후로 몇 년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작용도 있었는데....사람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있는 존재인데, 악한면이 완전히 잘려나간듯이....바보가 된듯한 부작용이있었습니다. 아주 순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정말로 하느님에게 응답을 받은것인가요?

신학에서는 그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나요?





   답 변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지금 님의 현재의 믿음이 과연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과거에 이러 저러한 경험과 체험 또는

감동적인 간증이 화려해도 그것은 지나간 과거입니다.

과거에 메이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며

과거를 회상하며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것도 어리석은것이죠

 

지금 나의 믿음이 과연 실제적인가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신학적으로 입증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앙과 믿음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지

신학이라는 학문을 위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의 과거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리신 것은
사람이 처리할 수 없는 죄들을 대신 처리하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어 거듭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과거의 죄들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기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지나간 시절의 체험은 잊으시고

지금 현재 나의 믿음이 예수님 안에 사는 삶인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왕년에 예수 잘 믿었다는 식의 말은 허공을 치는 소리죠

 

아래 성경 말씀을 잘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에스겔 33장]

 

7. 오 너 사람의 아들아, 이와 같이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집에게 파수꾼으로 세웠나니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내게서 나온 것으로 그들에게 경고할지니라.


 8. 내가 사악한 자에게 말하기를, 오 사악한 자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그 사악한 자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사악한 자는 자기 불법 가운데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는 내가 네 손에서 요구하리라.

 9.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 사악한 자에게 그의 길에 대하여 경고하고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게 하였으되 그가 자기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불법 가운데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혼을 건졌느니라.


 10. 오 사람의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의 집에게 말하라.

너희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범죄들과 우리의 죄들이 우리 위에 있어

우리가 그것들 가운데서 쇠약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찌 살리요? 하는도다.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돌이켜 자기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돌이켜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 하라.

 
 12. 사람의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네 백성의 자녀들에게 말하기를,

의로운 자가 죄를 짓는 날에는 그의 의가 그를 건지지 못하리라.

사악한 자의 악으로 말하건대

그가 돌이켜 자기의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으로 말미암아 쓰러지지 아니할 것이요,

또한 의로운 자가 죄를 짓는 날에는 자기 의로 인하여 능히 살지 못하리라.

 
 13. 내가 의로운 자에게 말하기를, 그가 반드시 살리라, 할 때에

그가 만일 자기 의를 신뢰하고 불법을 행하면 그의 모든 의는 기억되지 아니하겠고

그는 자기가 행한 자기의 불법으로 인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14. 또 내가 사악한 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할 때에

그가 만일 돌이켜 자기 죄에서 떠나 율법에 맞는 일과 옳은 일을 행하여
 15. 담보물을 되돌려 주며 자기가 강탈한 것을 다시 내주고

생명의 법규 안에서 걸어 불법을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요,

 
 16. 그가 범한 그의 죄들 중에서 하나도 그에게 언급되지 아니하리라.

그가 율법에 맞는 일과 옳은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살리라, 하라.


이 말씀은 구약시대처럼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돌이키는 자를 의롭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들을 대신 지시고 죄 값을 철저하게 치루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율법으로 결코 의롭게 될 수가 없고 율법은 죄를 죄로 들어나게 하며 정죄하는 기능이고 사람가운데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기에 결론은 사망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절망적인 인간들의 죄 들의 문제를 처리하시려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예수님이 친히 담당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죄들을 찾으실 수가 없다 그런 말씀입니다.

죄의 종 되었던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고 의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난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성도들은 방탕하거나 마구잡이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율법이나 십계명에 의하여 사는 자들이 아니며 성령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죄들을 눈 씻고 찾을려해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하면서 만일 여전히 옛 사람일 때 맺었던 죄의 열매들을 맺고 그 죄악 아래서 나오지 못한다면 그의 거듭남은 슬프게도 거짓이라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경건함과 교회 봉사 충성하고 열심을 내어도 죄 아래 거하는 것이 지금의 상태라고 한다면...(본인스스로는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말입니다.)

방언을 하고 기도 응답을 체험하고 벼라별 놀라운 것들을 한다해도....
그런것과 참된 믿음과 하나님의 자녀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좋은 기억은 추억일 뿐 지금 나의 모습이 여전히 죄 아래 살고 있으며 죄를 끊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나는 혹시 종교적인 어떤 감정과 다른 복음 다른 구원 다른 믿음에 속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 말입니다.

이 답변 내용은 질문자님께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포함하며 함께 돌아보자는 의미로 올립니다. 간혹 심령을 불쾌하게 하는 거친 단어가 있더라도...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지금 나의 믿음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 살펴보시고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거칠게 쓴 글에 맘 상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2011/02/02 - 이단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2011/02/01 - 요한의 계시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속지말자 !
2011/01/31 - 죄를 미워하되 멀리하진않습니다..
2011/01/31 - 예수 믿으면 의인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죄인이라?
2011/01/31 -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2011/01/29 -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알아야할 진실...불편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2011/01/28 - 참종교 찾기가 가능한가?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 문  

 

이단의 판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답 변  

 

 

아래 출처 싸이트 교회와 저는 아무 관련 없습니다. 검색을 통해 자료를 나누는 것이랍니다^^

 

http://kjbbc.byus.net/zboard/zboard.php?id=history&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

 

 

이단들이 "이단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역사가 인정하는 유일한 "사도직"의 계승은 사도들을 통해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이어지는데(행 1-28장)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부여된 일곱 가지의 위대한 신약의 "신비들"(고전 4:1-2)을 전파하였다(딤후 2:2)[딤전 3:16; 롬 11:25; 골 1:27; 고전 15:49-52; 계 17:5; 엡 5:32; 살후 2:7].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이 종결되면서 표적들도 사라지는데(고전 1:22), 사도들의 "표적들"(고후 12:12)은 최후까지 A.D.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도들을 통해서 개종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막 16:17)이 그때 쯤에 죽었기 때문이며, 사도를 통해서 개종한 사람일지라도 사도행전 28장 앞부분인 61년-62년 이전에 개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년이 지난 뒤에 표적들을 행했던 어떤 사람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바울도 그의 사역의 말기인 68년 경에는 표적들을 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딤전 5:23과 딤후 4:20을 주의 깊게 살펴 보라). 특히 사도직분을 계승했던(Apostolic Succession) 속사들은 - 실제로 계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 어느 누구도 사도들의 이적을 행한 사람이 없다. 이것은 신약 사도들의 능력과 권위를 모방하기 위해서 현대의 배교자들이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해야함을 뜻한다.

 

1. 로마 카톨릭을 추종하며,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부여되었던 표적들과 능력과 권위들이 마치 '로마의 이태리인 정치가들'로부터 - 아드리안(1159)부터 공산주의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99)에 이르기 까지 모두 이태리인이었다 - 전문 정치가인 독신 성직자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것 처럼 여기게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표적들"과 "기적들"이 고안되어야만 했다.

2. 20세기 "은사운동"을 따르고 "두번째 오순절"이 일어나고 있다는 시늉을 낸다. 그러나 성령은 33년에서 1999년까지 1966년 동안 어떤 오순절에도 임하시지 않았다. 또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런 표적들을 이제는 더이상 유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교회 (적 그리스도 밑에 있는 카톨릭 교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베풀기로 결정하신 것 처럼 믿게 한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고(딤후 2:15) 성경을 믿는(살전 2:13)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계략 가운데 어느 것도 종교적인 익살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교회사에는 사도들의 표적들과 기적들, 그리고 이적들과 같은 "사도직의 계승"이 없다. 혹 "계승"될 만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 28:19,20; 고후 5:20; 행 27:35; 갈 5; 롬 10-14; 골 1-2, 그리고 롬 3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을 위하여 설정된 명령들에 순종했던 사람들의 행위를 계승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참된 교회사에 있어서 "정통"에 관한 진정한 평가는 성도들의 믿음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는가와 더불어 각 시대의 현장에서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적용했는가의 여부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교회사는 성경대로 믿었던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성경의 진리가 보다 훌륭하게 실행되었던 모습을 맏을 것이다. 그들은 [밥 죤스 1세가 곧 잘 인용했듯이] "성경이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비록 그들이 성경의 내용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것"으로 믿었다. 그와 같았기에 성경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대로의 문맥위에 낱말들을 그렇게 놔둔 사람은, 이미 자신들이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의도적으로 결정해 놓고 그 낱말이 마치 그것을 가르치는 것 처럼 하기위하여 만든 변개된 다섯 개의 번역본들을 참조하는 사람 보다 항상 진리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노바티안즈(Novatians), 때로는 도나티스트(Donatists), 또 때로는 폴리시안즈(Paulisians)나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들은 항상 "이단"으로 낙인 찍혔다. 세상에 속해있던 그들의 동시대인들은 항상 비난을 피하였다. "이단"이라는 혐의는 A.D.60년 경부터(행 24;14) 현재까지 종교적 "권력을 가진 기관들"에 "항복하지 않은 성경대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일반적인 비난이었다. 어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도 그 비난을 피한 적이 없다[보드와(Vaudois), 브레드린(Brethren), 피터린즈(Paterines), 카따리(Cathari), 위그노(Huguenots) 등]. 현대의 배교한 정통주의자들에게 참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이단"인데, 그 이유는 창 3:1과 웨스트코트와 홀트를 통해 배교의 자리에 선 신학대학과 신학교들의 교수진들이 제작한 선전에 그들이 속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로마 교회에 의해서 항상 "이단들"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축자적인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참된 "어떤" 성경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경에 있거나 없는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에 첨삭하는 이단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에 첨삭하는 이단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자는 "성경을 변개시키는 거짓말장이"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을 표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창 3:1; 살전 2:13; 행 27:25; 요 8:47)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말씀하신 것에 "더하지" 않으며(잠 30:6), 거기서 "빼지도" 않는다(계 22:19).

우리는 어떤 "정통적인 것들"은 참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참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참된 것이다(벧후 1:21; 시 119:89). 그것들이 참된지 그른지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창 1:3,6,9) 그런 것이며(민 23:19), 하나님이 풍자적으로 말씀하셨으면(마 23:24; 암 4:4) 여러분은 그 말씀대로 여겨야 한다.

이 교회사에서 우리의 눈 앞에 전개될 한 주기를 볼텐데 이는 역사의 한 법칙으로서 다음과 같다.

1. 전도 : 이것은 "복음전도"라 부를 수 있다.

2. 가르침 : "교육"을 나타낸다.

3. 문화 : 과학, 철학, 전통이 가르침(또는 교육)에 유입되는 것을 뜻한다.

4. 배교 : 이방 종교 체제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전반적인 제안(타협)을 뜻한다.

5. 우상숭배 : 사람들이 복음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뜻한다.

이 다섯 단계는 교회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재차 발생하는 주기 안에서 발견되어지는데, 다음에 열거되는 또 다른 형태와 상응하는 점이 있다.

1. 사람 : 전도와 복음화를 뜻한다.

2. 운동 : 가르치는 시설과 기관들의 구비를 뜻한다.

3. 기구 : 세상 교육 체제(전문대와 일반대)를 따라 체계화되는 조직과 형태를 뜻한다.

4. 유적 : 이것은 성령께서 기관들을 우상숭배에 내버려둔 채 떠나가고, 훈련과 학구적인 기준들로 성령의 자유와 능력을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5. 유물 : 남아있는 운동의 흔적이 없다.

모든 종교운동은 "사람"으로 시작하는데(요 1:6), "운동"이 따르며 "기구"가 형성되다가 "유적"으로 남는다.

이 단계들을 가리키는 말은 시대마다 다양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어 교회사의 교훈들을 배우지 못하게 막는다. 예를 들면, 우상숭배는 때로 "무신론"이나 "공산주의"로 불린다. 때로는 "사탄숭배"나 "카톨릭"으로 불린다. 배교는 때때로 "통합"이나 "종합", "계몽", "고등 비평" 등으로 불린다. 문화는 때때로 "이성주의"나 "고학력 규범", "상류 문화 규범", "세련됨", "알찬 교육과정" 등으로 불린다. 다양하기 그지없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사용한 다양한 이름처럼 그렇게 다양한 이름이 "문화"와 "우상숭배" 및 "배교"에도 주어지는데 이는 그것들의 관련성을 덮어버리고 독자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그 주기를 가리워 버리기 위함이다. 예컨데, 오늘날 모든 신학교와 교회는 현재 그 다섯 단계 중 하나를 밟고 있다(사람-전도, 운동-가르침, 기구안의 문화, 유적에서의 배교 내지는 원래상태로의 복위인 물질 우상숭배), "원래상태"는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던"상태이다(엡 2:12).

독자가 사도행전을 공부해 보면(2:41, 4:33, 5:15, 6:18), 성령의 실제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즉각적인 사탄의 반대 공작이 있음(4;1, 5:17, 5:40, 7:54)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 산을 오르면 그 다음은 내려가야 한다. 위에 언급한 주기적인 형태는 이 동작을 설명한다. 일단 여러분이 복음전도와 교육을 거치면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적어도 "교육"을 말할 때에 갑자기 알렉산드리아의 원문을 추종하는 학자들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대 기독교 교육 체제를 고안해서 마련했으며 이들의 첫번째 신학 대학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 이것은 이십세기에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 아무리 "구령하고" "복음주의적"이라 할지라도 그가 교과과정을 마련하는 대로 배교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임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구령하는" 발기인겸 설립자가 구령하지 않는 배교자들을 교수진이라고 옹호하고 있을 때에 한 편에서 그 배교한 교수들은 "구령"이 "첫번째 일"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은 일 년에서 삼십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않도록 하는 전형적인 마귀의 술책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 각자가 부패하고 서로 감싸주는 동안(그럼으로써 서로의 죄들에 관한 변명들을 꾸민다) 강의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시속 160km의 속도로 믿음에서 떠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학교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마침내 성경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구령하는 "설립자"는 그이 교수진이 저지른 비성경적인 일들을 보호하고, 그 교수진들은 자기들도 역시 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 경솔한 자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그 영적인 수완 뒤에 숨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몸에 영적인 뼈 하나 없는 것이다. 그들이 강의실에서 목회 후보생들에게 저지른 피해는 가히 헤아릴 수 없는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만이 "구령하는" 설립자의 엄청난 죄들이 드러날 것이다. 모든 것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고(엡 5:27), 널리 알려진 경건한 변명들을 향해 이제 참된 조명이 비칠 것이다. 역사와 영성과 성경의 믿음이 하강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온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설립해서 세운 교육 기관들의 배교가 어느 시대에서나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다. 진리의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의 "니케아 종교회의"(A.D.325) 이전 시대의 예배"에 관한 자료들은 하낙(Harnarck), 프로브(Probst), 볼츠(Volz), 바이책커(Weizsacker), 잔(Zahn)과 다른 사람들이 초기 예배에 관해 생각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그 당시 유대인의 예배 형식이 회당에서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행 15장이나 행 7장 이후로도 볼 수 있는 신약 그리스도인 모임에서의 "예배"형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행 2-5장에서 구원받은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드렸고(행 3:1-4),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모였다는 말은 전혀 없다. 바울이 전파했던 회당들은(행 13:14) 유대인들이 모였던 곳이다.

만일 이방인이나 다른 민족인(행 10:22)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했더라면(행 19:8) 그들은 경청하거나 서서 신약의 진리를 전파했을 것이다(행 13:38-42). 어떤 회당에서도 신약 예배의 성찬식을 지켰다는 신약 기록이 없다. 교회사가들이 여러분을 로마 교회의 술책인 비성경적인 미로에서 방황하게 만들때, 그들은 여러분을 성경에서 즉각적으로 돌아서서 "디다케"(The Didache)와 "클레멘트 서신서"(The Epistles of Clement)들로 향하게 한다. 즉 성경의 기록(행 7-28)을 포기하고 "토빗"(Tobit)이나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처럼 더 이상 성경이 아닌 두 가지 이단자료로 대치하게 한다.

요한이 죽자마자 "성체 기도"가 갑자기 지역교회에 들어왔고, 그와 더불어 교회사가들은 "예배의식"과 "예배식 성구들"(필립 샤프는 교회를 이렇게 부른다)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교회사가인 샤프는 매우 자연스럽게 "성스러운 의식들"을 "성사들"로 부르는데, 신약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위대한' 학자는 "사실"의 "중립성"을 절대 준수하면서 가장 객관적인 교회사를 썼다고 하지만, 그도 침례 성사가 할례의 "표적"으로써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침례를 신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표적이나 "성사"로 행한 곳이 아무데도 없다. 사실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가르치는 것이다.

유아세례가 초대교회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샤프가 제시한 그 몰상식한 증거는 "그 증거"가 긍정적인 증거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제쳐두고 라도 단지 "강한 개연성"에 근거한 "사실"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1901년 미국표준역본(ASV) 밑에서 행해진 기독교 학문이었다. 여러분은 샤프가 웨스트코트와 홀트 처럼 어떤 "사실들"을 말할 때 역사의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사실"은 결코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실"을 말할 때는 그 사실이 "강한 개연성"에서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새국제 역본(NIV)과 새미국표준 역본(New ASV)을 만든 "헬라어 신약의 재구성에 있어서 인정된 원리들"에 기초한 "사실들"은 웨스트코트, 홀트와 필립 샤프의 이론들이었다. 그것들은 필립의 유아세례 만큼이나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소위 한국의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추천한 선생이 있다.)

유세비우스, 소크라테스, 소조맨(Sozoman), 디오도레, 칼리스키, 카씨오도러스, 미네(Migne), 테이너와 파시우스 같은 역사가들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하는 교회의 발달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기여하였지만, 그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은 그들의 인식과 능력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는 모두가 비성경적인 설명에 대하여 관대히 묵인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추출된 가장 위험한 몇몇 이단들이나 그 이단론에 동조하기 위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데서 파생된 이단들을 "더 선호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교회사가가 지역교회의 성격에 관하여 거짓되거나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교회사를 시작한다면 즉시로 자신이 물에 깊이 잠겨서 급조된 생명 유지기구 없이는 떠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세상 제도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침례받은 성도들의 지역 모임은 어느 교회사에서나 공부하게 되는 필수적인 단위이다. 신약에서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유아들에게 침례를 주지 않았으며, 단 한 사람도 죄인의 중생이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잘못 가르치지도 않았다.

2011/02/01 - 요한의 계시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속지말자 ! 
2011/01/31 -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2011/01/29 - 장로교만 분열이 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11/01/29 - 사람이 죽으면(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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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2011/01/21 - 성인들의 신화-프란시스와 어거스틴 (필독)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이 글은 다음지식 개신교란에서 계속 삭제당한 글이죠. 왜일까요???

대부분의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즐겨 애용하는 성경은 단연 요한계시록입니다.

종말론 휴거론 말세론이니 666 표니 무슨 칩이니 하며 식을 줄 모르고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필자가 얼마전에 신천지인이라면서 미소짓고 말을 걸길래 몇마디 하였더니 다짜고짜 계시록에 열두지파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아주 친절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선물 준다고 시디와 선전용 전도지를 주더군요.
당연 그 문구는 신천지측에서 개신교 목사들과 성경으로 토론재의하였는데 각 교단에서 응하지않았다며 자기들의 성경 해석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기사였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길게 대화할 수는 없었고...
사람을 따르지 말라고 말해줬으나 신천지인이 제 말에 돌아설 이유가 없겠지요^^
 꼭 들어보라고 강권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측은하게 보았을 뿐입니다.

저는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며 거짓말 하는 자들을 비평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다시 돌려 달라고 하더군요^^

당신들이 주장하는것이 성경에 합당한가 증거 자료로 받겠다 했더니 돌려 달라고 합니다.
시디를 들을 시간도 없고 들어 보나 마나 뻔하길래 돌려 주었습니다만,

사실 신천지나 기타 유사 사이비 집단들에게만 뭐라할 수 없는 것이 정통 개신교권에서 이미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그저 목사자리 지키고 돈에만 눈이 멀어서 교회경영법에만 익숙한 지라 "복음과 영혼구원" 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것이 이러한 자들이 우후죽순 나타나며 기존 교인들의 성경에 대한 무관심을 파고 들어 미혹하는 것입니다. 누굴 탓하겠어요. ㅡ..ㅡ


여기에는 목사라는 성직 특권주의가 한 몫을 합니다. 교회의 온갖 프로그램에 교인들을 동원시키느라 교인들이 성경에 무관심하도록 길들이는 것이죠. 설교만 들어서 믿음이 성장할 수 있다고 속이죠. 과연 그랬다면 신천지나 무슨 파에 교인들이 미혹당하느니 어쩌느니 할 이유가 없지요. 자기들 유리한데로 철저하게 성경에 무관심하게 하며 오로지 목사말에 따르도록 세뇌시키는 것에 성공했으니(이것에 성공해야 교회가 성장한다나 어쩐다나) 당연한 결과임에도...남 핑계들을 댑니다.


또한 여전히 무슨 무슨 칩을 들고 나오면서 자꾸만 헷갈리게 요동하도록 부추기는 이들도 있어서
비록 성경에 무식한 필자지만 그냥 두고 볼수 없어서 이글을 작성합니다.

요한계시록13장이 주로 이용되더군요. 아래 13장 을 함께 보기로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흠정역>

 1.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올라오더라.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2. 내가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4. 그들이 그 짐승에게 권능을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그와 전쟁을 하겠느냐? 하더라. 

 5.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6. 그가 입을 벌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독하되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7. 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포로로 끌고 가는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반드시 칼로 죽임을 당하리니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 

 11.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 그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곧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니라. 

 13.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14.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15.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17.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18.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 본문에서 제가 밑줄 친 것과  굵게 표기한 부분을 주의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도 요한 입니다.

과 한 짐승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짐승에게는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 있다고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신성모독하는 이름은 무엇일까요?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온 세상이 그 짐승을 따르는 것을 요한 사도가 보았습니다.

요한 사도의 당시가 아니라 미래적인 것입니다.
장차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따르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용과 그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누구일까요?

 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이러한 시대를 요한 사도는 이렇게 묘사하여서 성도들에게 경계를 촉구합니다.

 10. 포로로 끌고 가는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반드시 칼로 죽임을 당하리니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


포로로 끌고 가는 자가 있으며 포로 되어 끌려가는 자들이있고...
칼로 죽이는 자가 있으며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로로 끌고 가던자들이 오히려 포로가 되며
칼로 죽이던 자들이 오히려 칼에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혼란한 시대라는 것이죠. 뒤죽박죽 혼합과 무정부적인 상태와 같은 대 혼란의 정국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다는 요한 사도의 증언입니다.


인내와 믿음은 성도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좁은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용과 짐승을 온 세상이 놀라워하며 따라는 시대가 왔을때 성도들은 참으로 곤란하게 됩니다. 모두가 가야하는 그 보편적인 길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을 따르는데 익숙합니다. 다들 가는 그 길이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용과 짐승을 따르며 경배합니다. 온통 세상은 용과 짐승천하라는 것입니다. 모두들 그것이 진리라고 인정한다 그런 말입니다. 모두가 그 용과 짐승이 하는 일에 대하여 찬성하고 동의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6. 그가 입을 벌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독하되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도래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조롱하는것이 일상의 가벼운 취미거리가 될 정도로 온 세상이 용과 짐승에게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하며 진리라고 모두가 공감하는 시대....


진리가 가려지고 용과 짐승의 권세가 장악하는 암흑의 시대에....
성도들은 엄청난 인내와 믿음 외엔 아무것도 없는 시대....

지금이 과연 그런 시대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

베리칩이 666 표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주장에 혹 하는 분들도 상당히많은것 같습니다. 믿건 안 믿건 그것만을 집중해서 전하고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중요치 않다는 식으로 지나친 경각심과 함께 나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조심해서 나쁠것은 없겠지요.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가 전부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 일부 생각해볼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억지 주장 때문에...
교활한 사탄이 역이용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바로 분별해서 살피지 않으면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13.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14.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15.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17.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18.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아마도 이 말씀에 근거하여서 베리칩이 그 표라고 주장하는줄 압니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든지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차분하게 성경을 살펴 봅시다.

15,16절에서 그가(용=사탄)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다 죽이는 자요. 그 짐승의 형상은 또 말도 한다고 합니다. 이 형상은 크기가 작아서는 형상일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이라면 인형이나 장난감이겠죠.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거대한 형상에 두려움과 공포 혹은 경외감 또는 신비감을 느낍니다.


거대한 형상을 세워 놓아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도 되고 큰소릴 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특성이 거대함입니다. 그래서 성당이나 교회당을 엄청나게 크게 만듭니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어느 나라에 있는 거대한 예수형상도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형상은 가장 전망 좋고 높은 곳에 세워질수록 효과가 큽니다.


여러분들은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거절하면 죽인다고 하는데요?
지금이 그런 시대는 아니지요?


장차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이겠죠?
만일 그런 시대가 왔다면 믿음과 인내를 기본으로 갗춘 성도들이라면 어찌하겠습니까?
당연히 도망을 하겠지요. 할 수만 있으면 미리 미리 그 자리를 피할 것입니다. 모든것을 버리고서라도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날 것입니다. 물론 광고하면서 떠나는 어리석은 성도들은 없겠지요.

아주 조용히 자연스럽게 은밀한 중에 떠날것입니다.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17.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들만 매매를 할 수 있는 시대....

단지 표만이 아닙니다.

표나 짐승의 이름과 그 이름의 숫자를 가져야 한답니다.

베리칩이 그 표라면 이 세가지의 기능이 하나로 통합 되었다는 것이군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제 여러분들은 이 말씀속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용과 그 하수인 짐승을 온 세상이 따른답니다. 그러나 이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 표나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들만이...


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10. 포로로 끌고 가는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반드시 칼로 죽임을 당하리니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


구원받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이 땅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 본향을 찾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외국인이며 나그네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진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마치려합니다.

[히브리서 11장]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9. 믿음으로 그는 낯선 나라에 머무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머물렀고 자기와 함께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들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11. 믿음을 통해 사라 자신도 나이가 지났을 때에 씨를 수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 

 12. 그러므로 심지어 죽은 자와 다름없던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허다한 별과 바닷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이 나왔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14.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느니라.
 

성도가 믿음에 거하고 있는가 아닌가 확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사람의 교훈이나 사상을 따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인 미혹에 속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결론지으면서....

그저 이 부족한 글이 혹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질 문  


안녕하세요?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사함받은 사람입니다.

사설부터 들어가면 질문의 본점을 흐릴까봐 본론부터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_-; (__)

예수님께서 제 죄때문에 찔리시고 채찍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걸 분명히 알면서도 죄를 미워하고 싫어는하되 죄를 멀리하진않아 과연 제 자신이 예수님의 피로 정결함을 입고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시는걸까

라는 의문이 하루도 빠짐없이 듭니다.제 자신이 제 자신의 삶을봐도 예수님을 믿기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없어요.매일 죄짓고 후회하고 그것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드리고..이젠 하나님께 기도도 못드리겠습니다..

너무 죄송해서요..하나님께선 저를 생각하셔서 아드님까지 십자가에못박게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죄를 지으니 감히 하나님께 기도도 못드리겠습니다.게다가 수시로 일어나는 인간적으로 사악한 생각까지..전 인간적으로 봤을 땐 아주 나쁜놈입니다.

은혜를 갚(을 능력도없지만)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은혜를 이용해 죄를 짓는게접니다.이런 제 자신을 벗고싶지만 벗어지지않아 때때로 저에게 화가나고 슬프기도합니다.

또 제 머릿속에 제 스스로 "2000년전에 돌아가신 예수께서 어떻게 20년전에 태어난 나를위해 돌아가실 수있을까?"라는 생각을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백지화(?)시켜버리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앞으로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생활도 자주 갖도록해야지!라며 결심을 해도 몆는 열매는 하나도없습니다.지금 당장 성경책이 옆에있는데도 읽지않는 저를 좀 이글을 읽고 계시다면 좀 봐주세요.하나님..

성령께서 계시면 성경말씀대로 사랑과 화평과 온유와 오래참음 등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하는게분명한데

전 하나도 열린게없습니다.-_-;아! 이 상황에서 저의 힘으로 어떻게할 수만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전 아무것도 할 수없는 나약한 존재라서 오직 하나님께서 일해주시길 바라는 맘뿐입니다.

 





   답 변  

 

안녕하세요

부족한 제가 님의 질문에 답변할 자격은 없지만 나눠보도록 합니다.

님이나 저나 동일한 부족한 사람입니다.

 

님의 내용을 보고 제가 생각해 볼 때는 이렇습니다.

님은 구원에 대한 지식은 알지만 그 사실을 믿는 것에서 확신이 없어 보입니다.

 

구원과 죄 사함에 대한 지식을 아는것과 믿는것(믿어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옛 사람과 거듭난 새사람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옛 사람이 죽고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를 통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니고데모는 이해하지못했지요.

 

이것은 "믿음" 으로만 가능합니다.

 

니고데모가 못 알아들으니까 광야에서 모세가 장대에 놋 뱀을 메달아 올린 것을

예화로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민수기 21장

 

 8.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를 위해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하시니라.
 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더라.

 

이 말씀에서 무엇이 보입니까?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더라 ---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쳐다본자들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 하나님의 말씀

 

구원에 대한 지식을 알아도 믿음으로 믿어지지 않는다면...?

 

 

갈라디아서 3장

 

 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라.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


 3.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


 4. 너희가 그토록 많은 것들로 헛되이 고난을 당하였느냐, 과연 그 일이 헛되냐?


 5. 그런즉 너희에게 성령을 제공해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기적들을 행하시는 그분께서 그것을 율법의 행위로 하시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하시느냐?

 

 

이 말씀이 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01/31 - 예수 믿으면 의인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죄인이라?
2011/01/31 -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2011/01/30 - 유산 상속시 십일조하는건가요?
2011/01/30 - 거룩함이 무너져 내렸다…
2011/01/30 -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목사님들 고견 듣고 싶습니다.
2011/01/29 -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알아야할 진실...불편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 문  

 

예수 믿으면 의인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죄인이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9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 3:11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0:38

 

위 성절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예수 믿는 자는 의인입니다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지고 갔다고 하였고독생자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고의인(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역시 우리는 죄 인입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죄인인가요?





   답 변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차이를 구분해야 하겠습니다.

역시 우리는 죄인이라고 하며 가르치는 자들은 목사들 뿐이겠지요^^

 

그래야만 매 주일 교회에 오게 하며 십일조와 헌금을 걷을 수가 있거든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옛 사람에서 새 사람(거듭남)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서 자녀된 신분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종교적인 경건함과 의로움과 구제와 봉사로 합리화 시키고싶다는 수작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구원의 비밀을 성도들이(교인들) 알게 되면,

혹시라도 눈치를 채면 교회당이라는 조직속에 더 이상 잡아둘 수가 없기에

목사와 신학자들은 어찌하든지 속이려 하지요.

 

목사가 없고 신학이 없고 교회조직이 없으면 이단에 빠진다는 식으로 공갈을 칩니다.

 

그런 시대는 성경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원하고 갈망한다면 언제든지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단인가 사이빈가 삯군 목사인가 바른 목자인가를 구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내가 구원 받았나 안받았나를 헷갈려하는 것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결국 목사들이 설교나 교육을 통해서 이러한 구원에 대하여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고

두루뭉실하게 비켜갔거나 아니면 정작 본인들 조차 구원에 대하여 의심(몰랐거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교회에 각종 행사와 종교 프로그램과 희안한 시스템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씨잘데 없는 부흥성회나 간증집회로 시간 죽이는 것입니다.

복음은 실종되었고, 복음이 없기에 자꾸 인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쇼가 연출되는 것입니다.

안그러면 교회당 안에 교인들을 모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아는 자가 목사라면 조직 교회에 연연하지않습니다.

정확한 복음을 전달하여 교인들이 그 복음으로 사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교회당에 성실하게 나오나 안나오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복음을 들고 그 복음을 삶의 현장속에서 살아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동안 기독교 전통속에 눌러붙은 주일성수니 십일조니 하는 종교적인 것에서 자기의 믿음을 학인하려는 어리석음에서 자유로와집니다.

 

왜 종교가 아편이며 중독성이 강하고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는가요?

바른 복음 바른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으니까 교회라는 조직 속에서 종교적인 어떠한 것들을 하고

눈에 보여지는 어떤 것을 통해서만 자기의 신앙과 믿음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의 특징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떠한 조직과 문화에 길들여지는것.

눈에 안보이면 두렵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사람의 눈에 안보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인간의 노력과 공로가 있어야 안심한다는 것이죠. 
어떤 눈에 보여지는 장소에 신을 고정시켜놓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신이 그 자리에 꼭 좌정하고 계셔야 인간들은 안심합니다.

 

만일 그 자리에 신(신의 형상,우상들, 신전들, 제사장들,사제들)이 없으면
깜짝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모든 종교적인 공통점은 인간들이 자기를 위하여 신을 고정된 곳에(형상이나 의식) 가둬두고 조종하려고 합니다.

 

사탄적인 생각이죠.

그래서 신을 달래기도 하고 즐겁게 해주어서 신께서 다른데 신경 쓰도록 하고는

인간들이 스스로가 신의 행세를 하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에서는 반드시 신이 눈에 보여야 하고 언제나 거기 있어야하며

움직이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형상들을 자꾸만 아름답고 거창하게 만들어서 세워두는 것입니다.

동상을 세워놓으면 꼼짝말고 거기 있어야하기 때문이죠.

 

여러분...

동상이 규모가 크고 웅장할 수록 종교적인 것과 전통이 화려합니다.

그곳에는 진짜 신은 없고 신의 대리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법입니다.

 

신의 형상들은 항상 거기 서 있거든요.

 

그 신상이나 형상들 아래서 사람들은 엎드립니다.

최고의 예를 다해서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증한 것을 금하시고 미워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구원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것들이 허상이며 허무한 것임을 압니다.

이러한 종교에 속지 않으며 구속당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종교적이며 외형적인 형식에 얽메이지 않습니다.

 

이미 믿는자 한 사람 한사람 안에 영으로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과 동행하기 때문이죠.

당연히 죄인이라고 할 이유가 없지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따라 걷기 때문에 '의와 거룩함과 화평함"을 누리며 나누는 삶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거듭난 성도들과 그렇지않은 종교인들과의 차이랍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웅장하게 세워진 형상에 절하지 않습니까?

또는 거대한 건축 건물을 자랑하며
그것에다가 믿음과 신앙을 두고 구원을 확인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종교인이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직은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 말이 너무 가혹하십니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이 그렇게 증거하기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옛 사람인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새 사람인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신의 형상이나 신이 임재한다는 장소에 대하여 두려움이 있거나 경외감이 있다면?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석이나 금은 동을 사람이 곱게 매끄럽게 만든 형상이지 그것은 죽은것이며 스스로 말할 수도 없는 것이죠.

 

종교사기꾼들이 이러한 사람들의 종교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지...

그러니까 자꾸만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며

구원에 대하여 헷갈리게 하고

율법과 복음을 짬뽕시켜서 울겨 먹는 것입니다.

 

여기에 머리가 좀 약삭 빠른 인간들이 서로 자기가 교주요 예수요 성령이라 하면서 설치는것이죠.

왜냐하면 뻔히 그들도 가짜임을 알기에 그런 것입니다.


2011/01/31 -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2011/01/30 - 거룩함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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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5장]

 1.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는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지은 이 말 곧 애가를 들으라.
 2. 이스라엘의 처녀가 쓰러졌으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그녀가 자기 땅에서 버려졌으며 그녀를 일으킬 자가 없도다. 

 3.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천 명이 나간 도시가 이스라엘의 집을 위해 백 명만 남기고 백 명이 나간 도시가 열 명만 남기리라. 

 4. 주가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 나아가지 말라. 길갈이 반드시 포로가 되고 벧엘이 망하리라.
 6. 주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그리하지 아니하면 그가 요셉의 집에서 불같이 일어나 그 집을 삼키리니 벧엘에서 그 불을 끌 자가 없으리라.
 7. 공의를 쑥으로 바꾸며 의를 땅에 버리는 자들아,
 8. 너희는 일곱 별과 오리온을 만들고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며 낮을 밤으로 어둡게 만들고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는 자를 찾으라.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
 9. 그는 노략 당한 자를 강하게 하여 강한 자를 치게 하나니 그 노략 당한 자가 가서 요새를 치리로다.
 10. 그들이 성문에서 꾸짖는 자를 미워하며 올바르게 말하는 자를 몹시 싫어하는도다.
 11. 너희가 가난한 자를 짓밟고 그에게서 밀의 무거운 조세를 거두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들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좋은 포도원들을 세웠으나 그것들의 포도즙을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범죄가 많고 너희의 큰 죄가 많음을 내가 아노라. 그들이 의인을 괴롭히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외면하여 그들의 정당함을 묵살하느니라.
 13. 그러므로 그런 때에는 분별 있는 자가 침묵을 지키리니 그때는 악한 때니라.
 14. 너희가 살기 위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주 만군의 하나님이 너희가 말한 것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15.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 그리하면 주 만군의 하나님이 혹시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모든 거리에서 통곡하는 일이 있고 그들이 모든 큰길에서 이르기를,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며 농부들을 불러 애곡하게 하고 애도하는 데 능한 자들을 불러 통곡하게 하리라.
 17. 또 모든 포도원에서 통곡하는 일이 있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라. 주가 말하노라.
 18. 주의 날을 사모하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 날이 너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주의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니
 19. 그것은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해 도망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으로 들어가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린 것 같도다.
 20. 주의 날은 어둠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빛이 아니니라. 심지어 너무 어두우므로 그 날에는 밝음이 없지 아니하겠느냐? 

 21. 내가 너희의 명절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너희의 엄숙한 집회들에서 냄새를 맡지 아니하리라.
 22. 너희가 비록 나를 위하여 번제 헌물과 너희의 음식 헌물을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아니하며 너희의 살진 짐승으로 드리는 화평 헌물도 내가 중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23. 너는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없애라. 네 현악기의 곡조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공의를 물같이, 의를 힘찬 시내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25.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희생물과 헌물을 내게 드린 적이 있었느냐? 

 26. 오히려 너희가 너희의 몰록의 장막과 너희의 형상들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너희 신의 별을 가지고 다녔나니
 27.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마스커스 너머로 포로가 되어 가게 하리라.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인 주가 말하노라.



Posted by 비회원




  질 문  


배우자나 부모님 사망시에 유산상속 받는 경우에도 십일조 하는건가요?

꼭 좀 답변부탁드려요

 





   답 변  

 

 

구약시대의 제사장들도 사라졌고 제단이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레위인들도 없고... 그렇습니다.

더구나 십일조는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에게만 해당되는 세금입니다.

열두지파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에서 봉사하는 지파가 있지요

레위지파입니다.

 

아론 제사장과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는 다른 직업이 없으므로

열한 지파들이 땅의(밭)소산의 십일조를 거둬서 그들에게 분깃으로 줍니다.

그들이 먹고 힘을 내어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라는 뜻이죠

 

이러한 십일조 제도는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에게만 해당하는 법입니다.

 

질문자는 혹시 이스라엘 민족의 시민인가요?

 

우리들은  구약의 선민이 아니라

이방인들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와 목사들 역시 이방인들이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십계명과 율법도 이방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목사들의 주장처럼 십일조가 지금 신약시대요 은혜시대요

복음의 시대에서도 유효하다고 하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목사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자칭 유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님은 혹시 유대인으로 개종하셨나요?

그러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 가셔서 각종 절기들과 십일조와 금식과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군요...

당연히 제사장들도 없고 레위인도 없으니...

어디에다가 십일조를 드리죠?

 

깊이 생각해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에서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아래 글들을 참고하시고 바른 신앙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2011/01/03 - 십일조의 의미는 율법이 아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시
2010/12/11 - 십일조 때문에 혼동이 되시나요?
2010/12/01 - 십일조를 까발리다
2010/08/24 - 십일조 땜에 또 열받다
2010/08/20 - <쇼킹 이슈!>십일조 떼먹은 도둑의 이야기!
2010/03/05 - ★★ 유대인들은 지금 십일조를 하는가 알아보자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2011.01.19 18:08

거룩함이 무너져 내렸다… 기독 지성들이 말하는 ‘추락한 한국교회’-이태형선임기자국민일보

“지금 우리에게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이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세계적 기독변증가인 제임스 패커의 말이다. 그는 ‘거룩의 재발견(Rediscovering Holiness)’이란 책에서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패커는 “거룩함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에 놓인 아치와 같아서 두 기둥 중 어느 하나가 가라앉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거룩은 비단 패커뿐 아니라 오스왈드 챔버스, J C 라일, 댈러스 윌라드 등 기독 지성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주제다.

한국교회라는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문애란 웰콤 고문은 연이은 한국교회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서 “성도로서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 비단 문 고문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곡소리를 듣는 수많은 목회자, 성도들이 도처에 있을 것이다. 만신창이의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의 회복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서울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는 지난 16일 주일예배에서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이라는 위기 돌파를 위해 목회자들의 자기 비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설교했다. 박 목사는 “우리 삶이 후패하더라도, 고난과 박해로 점철되더라도, 기도가 전혀 응답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만으로 만족하자”고 당부했다. 거룩을 회복할 때에 예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은준관 총장은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거룩을 빙자한 신앙의 위선을 쌓아왔다”고 질타했다. 그는 “한국교회에 일이 터질 때마다 ‘목사, 혹은 성도가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고 했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라면서 “목사와 성도는 그런 구호로 결코 죽지 않는다. 직분과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삶과 신앙의 구심점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에만 진정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지금 한국교회에 ‘거룩의 재발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거룩은 무엇인가. ‘거룩의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영국의 라일 주교는 ‘거룩함이란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한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판단에 동의하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며,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성경의 기준에 비추어 사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라일 주교가 정의한 거룩의 삶이 이뤄지고 있는지 심각히 자문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의 저자 오스왈드 챔버스는 신자들이 거룩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다며 참된 거룩을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룩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이 땅에서의 관심을 지극히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무한히 넓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커 역시 “현대교회들은 대체로 영성만을 강조하며 도덕성은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여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서 “괜찮다고 하는 교회들도 거룩한 영성을 추구하지만 거룩한 삶은 외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대가 치르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은 총장은 “한국교회에서 그동안 신앙을 너무나 인본주의적으로 끌고 간 것이 문제”라면서 “심지어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도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믿음을 쌓아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설교와 봉사가 한국교회를 망쳐놓았다는 진단이었다. 그에 따르면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모든 구심점을 둘 때에 비로소 가질 수 있다. 그때라야 신앙과 봉사, 요즘 사회와 교회의 주된 관심사가 된 복지까지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각 시대마다 세계 전체를 덮어주는 ‘거룩한 덮개’가 있었다고 말했다. 거룩한 덮개는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한국교회를 덮어주는 거룩한 덮개는 무엇인가. 지금 비신자는 물론, 신자들까지 한국교회가 사회에 던져줄 수 있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헷갈려하고 있다. 뜻있는 목회자들은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의 거룩한 덮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자체가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1년 한국교회는 안팎으로 ‘거룩을 재발견 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간절히 부탁한 요청이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위기 11:45, 베드로전서 1:16)

이태형 기자 thlee@kmib.co.kr 





답변  


기독교라는 종교화가 문제의 근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복음적인 초대교회와 얼마나 동떨어진

인간 종교 조직인가부터 절실하게 인정해야합니다.


거룩함이란 말씀 외에 다른것이 아닙니다.

국민일보라는 종교영업 신문기사가 어찌 거룩함을 입에 담을수 있습니까?

다만 기독교라는 업종으로 영업하는 장사꾼 조직일뿐...

 

ㅈ00 라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왕국의 교주가 운영하는 신문사가 감히 거룩이라는 말을

할수 있나요?

 

위의 기사 내용에서 지성인들이 말하는 거룩함이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거룩함인지 구별이 안되는지요?

 

"영국의 신학자이자 세계적 기독변증가인 제임스 패커의 말이다. 그는 ‘거룩의 재발견(Rediscovering Holiness)’이란 책에서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패커는 “거룩함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에 놓인 아치와 같아서 두 기둥 중 어느 하나가 가라앉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거룩은 비단 패커뿐 아니라 오스왈드 챔버스, J C 라일, 댈러스 윌라드 등 기독 지성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주제다."

 

신학자들의거룩함이란 영성과 도덕성으로 주장하는데...

번드르한 언어유희입니다.

 

거룩함이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사람의 이목을 즐겁게 하는 경건한 종교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이것이 아니고선 거룩을 말할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의 영성과 도덕성이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같습니까?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분노의 형벌이 십자가에서 치뤄졌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 가장 혹독한 형벌을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그 십자가에서 회복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는 인간의 어떤 것들로도 감히 설 수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밟히고 찔리고 상하며 팽개쳐지는 것입니다.

 

실 끊어진 연처럼 그렇게 곤두박질 처지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이들에게는 이 피가 불편합니다.

빨갛게 뿌려지는 피가 아름답습니까?

 

그 피가 거룩합니까?

짐승의 피도 역겨울 것인데...

하물며 죄인들의 피가 어떻게 감동을 주며 화해를 시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의 피를 요구하셨습니다.

안티들과 유태인들은 그 십자가의 피를 "인신제사" 라고 하며 항의합니다.

하나님이 그러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약의 예수님은 거짓이며 구세주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신이 죽을 수 있으며 피를 흘리는가 하는 주장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에 대하여

그 피로 인하여 죄 사함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동의하십니까?

 

그 피만이  여러분들의 씻을 수 없는 죄들이 씻겨진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위에 기사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고 절규합니다.

그런데 거룩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기독교라는 종교가 영성이 우수해야하고 도덕성에서 최고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빠진 영성과 도덕적 우월성은 여전히 종교일뿐...

거룩함이 아닙니다.

 

이 피에 대하여 거부하기에...

이 피의 능력을 부인하기 때문에 교회라는 종교 조직안에서 기껏 사회참여운동하고

좀더 바르게 살고 품위를 유지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만, 거룩해 진다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피란 인간의 모든 경건함과 종교적인 거룩함과 철저하게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저들이 말하는 거룩의 회복입니다

그러니 결코 예수님의 피가 끼어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함에 대하여 참여하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 나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는 거룩함은 거짓이며 위선일뿐입니다.

 

초대교회와 사도들이 거룩에 참여할 수있었던 것은

그들의 특별한 도덕심이나 영성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조용기 목사 사후 대비'에 등 터지는 <국민일보>

조용기 목사가 예수님인가?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목사님들의 고견 듣고 싶습니다.

 

늘 승리하십시오^^

 





답변  

 

 <시편 23편>

1. (다윗의 시)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분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3.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들의 얼굴 앞에서 내 앞에 상을 차리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택하셔서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나도록 구출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며

그들이 죄 없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이 약속하심을 성취하시는 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기 때문이죠

 

동일하게 죄아래 팔렸으나

사람들의 의로움이나 특별한 재능과 순종하는 행함때문이 아니라

이미 언약하신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보다 더 큰 존제가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던 선지자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의 찬양과 고백 속에 이러한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모세의 신명기에도 분명하게 증거되는 것과 일치합니다.

 

다윗의 믿음이나 신앙이 원인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 때문에 라는 것입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결코 헛되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과 영광스러운 이름을 아들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선물이며 은혜로 받았습니다.

 

이 모든 구원하심과 작정하심과 예정하신 것들이

누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심 때문에 라는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 씻기움을 받아 죄악으로 부터 구출 받아, 구속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자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기뻐하신다 그말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예수님의 피가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옛 죄를 보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 것 때문에..

아들 예수님의 보혈을 보고 화목하셨기에

구원얻은 자녀들은 실상 예수님과 연합된 관계가 되어서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구원

 

선교사가 된 웨슬레

 

마침내 웨슬레는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성직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웨슬레는 선교사가 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을 떠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인디언들에게 전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웨슬레는 대서양을 건너면서 그 지루한 항해 중에도 자기의 종교 생활에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일과표를 만들어 놓고 힘써 행했습니다.

 

4시 - 5시 명상과 기도
5시 - 7시 경독회
8시 - 9시 기도회
9시 - 12시 성경연구
12시 - 1시 간증시간
2시 - 4시 전도
4시 - 5시 저녁 기도회
5시 - 6시 명상과 기도
6시 - 7시 성경낭독회
7시 - 8시 저녁예배
8시 - 9시 설교


 

 

항해 중에 이같이 열심있는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까? 그는 요즈음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나 오락 같은 것에는 단 일분이라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매시간을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생활하려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돛단배로 긴 항해를 했습니다. 비바람과 사나운 파도에 얼마나 시달렸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석달 동안 이와 같이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이같은 열심에 대해 누가 탄복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누군들 그의 반이라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명성있는 옥스포드 대학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까지 되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는 언어와 풍습과 생활습관이 다른 이방인에게 선교할 수 있는 모든 여건과 자격을 다 갖추었습니다. 온 영국을 통틀어 그와 같이 진실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성공회의 성직자가 되었을망정 그는 정작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목사는 되었으나 정작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웨슬레도 여전히 구원얻지 못한 잃은 영혼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면 당신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같이 매일 빠짐없이 종교생활에 충실했던 웨슬레도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했다면 그 열심에나 그 지식에나 그 덕행에 있어서 도저히 그와 견줄 수 없는 당신이라면 당신의 참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도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함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사로 자처하고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금 대서양을 건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열심과 목적으로 선교사가 되어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아,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닙니까! 전도하고 설교하고 고생하고 수고하고 그리고 기도하고. 이 모두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원키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맛보게 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자신이 구원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들의 답답하고 괴롭고 불안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설교하는 두 사람의 목사!

 

 

구원얻지 못한 사람이 목사도 될 수 있고 선교사도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요 선교사이지만, 성경을 몇 십년 연구했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직자의 까운을 몸에 걸쳤어도 그 영혼은 여전히 불행한 어둠 속에 헤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능히 생각할 수 없는 고초를 능히 견뎌내고, 비록 모든 죄 문제를 깨끗이 하고 고결하게 종교생활을 함으로써 만인의 칭송을 들을지라도, 그 영혼은 그리스도를 만나본 적이 없고, 구원받은 기쁨과 평강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진실로 구원받았습니까?

 

웨슬레는 죽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다면 그와 같은 죽음의 공포가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공표, 이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본다면 자기 영혼의 상태를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함께 배를 탄 손님들 가운데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있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란 진젠돌프 백작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입니다. 이들 모라비안 교도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없다는 사실을 웨슬레는 깨달았습니다. 거센 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것같은 위험 가운데 놓일 때마다 웨슬레는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으로 안절부절 했지만 모라비안 교도들은 한결같이 변함없는 마음의 안정이 있음을 목도했습니다.

 

이에 대한 웨슬레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7시가 되어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오랫동안 관찰해 보았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 남달리 깊은 경건이 스며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겸손했다. 그들의 이와같은 꾸준한 겸손의 미덕은 배에 탄 다른 손님들을 위한 천한 잡무를 솔선해서 무보수로 맡아 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영국인들은 이런 일은 손끝도 까딱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 보수 없이 남의 천한 일을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저들의 교만한 마음에 좋은 참고가 되겠지요. 사랑하는 주님은 그들을 위해 이보다 더한 일도 하셨는데요'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들은 온유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짜증을 내고 분통을 터뜨리고 성을 낼 일도 많았는데도 그들은 언제나 온유했다. 남들이 그들을 떠밀고 구타하고 넘어뜨려도 그들은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자기 일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불평과 불만이라고는 조금도 들어볼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고 나서 또 한가지 사실을 더 발견했다. 그들은 두려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뻐기지도 않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혈기를 부리지도 않고, 악하게 대항하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서워하는 마음 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집회를 시작하려고 찬송을 부를 때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 위를 덮쳤다. 배의 제일 큰 돛이 산산조각이 났다. 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물바다가 되고 물은 갑판 위로 노도같이 밀려들었다. 깊은 흑암은 이미 우리를 삼켜버린듯 했다. 영국인들 선실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은 조용히 찬송을 계속 부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후에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죠.' '그러나 부인들이나 어린이들은 무서울 것이 아니겠어요?' '아닙니다. 우린 비록 연약한 아녀자라도 죽는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웨슬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도저히 이제까지 듣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웨슬레는 비로소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을 만난 것입니다. 중생한(거듭난) 성도들,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자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과 심령의 자세는 자기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겸손했고 온유했고 그리스도인다운 것이었습니다. 화내는 일이 없고 억울해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무서움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침착하고 조용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참으로 그들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풍랑 속에서 파선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웨슬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신은 지금껏 이런 체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친구여, 당신은 어떠합니까? 당신도 이런 체험에 대해서는 외인(外人)입니까? 당신도 지금 웨슬레처럼 이러한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입장입니까? 아니면 당신도 그들 모라비안 교도들처럼 그리스도를 생활 가운데서 간증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이신가요?

 

결국 웨슬레는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모라비안 교도의 한 전도자(모라비아 교도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피터 볼리 - 참고)가 몇가지 심각한 일신상의 질문을 하겠노라며 웨슬레에게 대답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 자신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내 형제여, 먼저 두어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형제의 마음 속에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요. 성령이 친히 형제의 영으로 더불어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신지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무어라고 대답할 말을 몰랐다. 이것을 눈치챈 그는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분이 세상의 구주인 것을 압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신 것을 아십니까?' 나는 대답했다. '그 분이 죽으신 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함인줄 생각합니다.' '그것을 스스로 확신하십니까?' '예.' 그러나 나는 내 말이 허공에 뜨지 않았나 두려워했다."

 

이 얼마나 신기한 대화입니까! 의기양양하게 선교사로 미국에 건너온 성공회 목사와 겸손한 한 사람의 모라비안 전도자, 그들의 일문일답을 듣고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섬광같이 번쩍 비취는 그 무엇이 없습니까?

 

 

"형제의 마음 속에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요?

성령이 친히 형제의 영으로 더불어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시는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질문이 당신의 마음을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 안에는 증거가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웨슬레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첫마디 질문부터 그를 완전히 침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당신이 기독교인이냐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였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구주인 줄을 압니다."

 

이것은 웨슬레가 잠깐 망설인 후에 한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말은 그 누군들 대답 못하겠습니까?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라면 그가 강도이든 혹은 술주정뱅이이든 그런 대답은 능히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가, 아니 웨슬레 같은 사람이, 많은 학문과 열심과 경건을 겸비했던 웨슬레가 가까스로 그것 밖에 더 대답을 못한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러자 다시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신 사실을 아십니까?"

 

당신을 구원하신 것을 아십니까? 물론 그분은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습니까? 구원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웨슬레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이 죽으신 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함인줄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슨 대답입니까? 그는 단지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없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까?

모라비안 전도자는 이어서 질문했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확신하십니까?"

 

"예."

 

웨슬레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허공에 뜨지 않았나 두려워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독자여, 당신은 어떻습니까?

 

구원의 체험이 없는 선교사가 여기 한 사람 있습니다. 당신도 혹시 이 선교사처럼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웨슬레는 2년 동안 선교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실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되돌아오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을 떠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디안들을 건지기 위해 나는 미국으로 갔다. 아, 그러나 누가 나를 건질소냐! 이 믿지 않는 악한 마음에서 나를 건져줄 자 누구인가! 나의 종교는 한여름날의 종교다.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만 없으면 나는 자신이 있고 장애물이 없다. 그러나 죽음이 나의 면전에 나타나면 내 심령에 풍파가 이는구나! 그러니 어디인들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말이 나올 것인가."

 

이것이 웨슬레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누가 나를 건질소냐?"

 

수년 동안 신학을 하고, 수년 동안 설교를 하고, 그리고 또 미국에 건너가 인디안들을 건지려던 웨슬레가 자기 자신을 건져야만 했으니! 결국 미국에 간 것은 남을 건지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건지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자기를 건지기 위한 노력으로 영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아, 누가 나를 건질 것인가!"

이것이 당신의 탄식은 아닙니까?

 

당신의 신앙생활은 당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까?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확실한 답변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구원을 깨달은 웨슬레

 

영국에 도착한 웨슬레는 다행히도 한 사람의 모라비아 전도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피터 볼레르(피터 볼리)'라는 전도자였습니다. 그와 교제를 나눈 결과 자신에게 전혀 구원얻는 믿음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멸망받을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로소 시인한 것입니다. 마침내, 결국 목사도 아니요, 선교사도 아니요, 그리스도인도 아닌, 벌거벗은 한 죄인의 위치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추구해 왔던가요! 그러나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구원얻는 믿음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설교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도 분명히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소유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를 볼레르 전도자와 의논했습니다. 이에 대해 볼레르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자신이 믿음이 생기기까지 믿음에 대해서 설교하시지요. 그래서 믿음이 생기게 되면 다음은 믿음을 얻었기 때문에 믿음에 대하여 설교하시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최고 학부를 나온 목사, 그러나 상한 심령을 부둥켜 안은 성직자, 친구 전도자의 충고를 듣는 그 간절함을 보십시오. 웨슬레는 그래서 강단을 버리고 감옥 전도에 나섰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웨슬레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인 6일에 나는 이 새 교리를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내 심령은 이 전도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전도였다. '믿음으로써 얻는 구원'에 대하여 내가 처음으로 증거한 사람은 사형 집행일을 앞둔 한 사람의 사형수였다."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그리고 열심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종교인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던 웨슬레, 이제 그 모든 애씀과 노력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 아닌 믿음으로써만 얻는 구원을,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죄인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독자여,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을 눈 앞에 둔 한 죄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죄인은 감옥에 갇혀 자유가 없는 죄인입니다. 선행을 쌓고 자기의 공로를 쳐다본다는 것은 이 죄인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이 죄인이 구원얻을 길은 무엇일까요! 독자여, 이것이 바로 당신의 실상이 아닌가요?

 

당신은 지금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언도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당신은 죽습니다. 왜 그런가요? 당신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사람 앞에서는 선한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아닌 사람이 천하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당신은 지금 죄 속에 갇혀 요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몸이고 사형을 면할 도리는 전혀 없습니다. 완전히 무력한, 꼼짝할 수 없는 바로 이 죄인과 같은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 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제 눈을 돌려 웨슬레를 보십시오. 구원받지 못한 전도자, 그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사형수에게 전해주려는 것입니다. 그 자신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으나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자기 앞의 그 사형수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웨슬레는 이 순간까지 사형수는 커녕 그 어느 누구에게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전해보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희망이 있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부모의 무릎에서부터 들으며 자라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즉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웨슬레도 구원이 사람의 공로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믿는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알아오고 믿어오던 것과는 너무나 엄청나게 판이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웨슬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최종적인 결정이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웨슬레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볼레르 전도자가 말한 사실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질수 수 있는 일인가? 어떻게 믿음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사랆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당장 사람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와 육의 비참한 처지에서 의 가운데로, 그리고 성령의 기쁨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도행전을 읽었다. 그런데 나의 놀라움은 너무나 컸다. 성경의 모든 사실 하나 하나가 모두 순간적으로 구원얻은 그것만을 기록한 것이고 그 외 달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구원이 믿는 그 즉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요한 웨슬레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이성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이런 말을 들을 때 이단이라고 당장 일축해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모라비안 교도들과 접한 후 감화를 받은 그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 있는 웨슬레에게 역시 피터 볼레르가 안내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서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숱한 증인들을 직접 대면케 해주는 것만으로써도 족한 것이었습니다. 웨슬레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주일날에도 역시 나는 이 살아있는 간증들을 접하게 되었다. 나의 완고한 고집은 다시 무너져버렸다. 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는 다음에야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을 의지하는 믿음을 순식간에 주신 것과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와 공포에서 성결과 평안으로 그 즉시에 이르게 하신 사실들을 증언했다.

 

나는 이 이상 더 의심할 수 없었다. 오직 나의 부르짖음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용서해 주소서' 하는 것 뿐이었다."

 

과연 웨슬레의 마음은 진실했습니다. 분명한 증거에 부딪히자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거듭난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한결같은 그들의 간증은 믿는 즉시로 구원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더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 웨슬레는 새로 발견한 이 믿음을 자기의 교단에서 두려움 없이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아직 그만한 체험을 얻지 못했지만 누구든지 믿는 순간에 구원이 이루어짐을 거리낌이 없이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교회는 하나 둘씩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아무 교회도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강단을 지키는 엄연한 성직자이면서도 자기 교회에서 성직자 대접을 못받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가르쳤지만 진리와 그 진리 전파자는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 자신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순간, 중생에 대한 경험을 맛보는 순간이 마침내 왔습니다. 그의 구원 얻은 간증을 들어보겠습니다.

 

"알드즈게이트 가에서 저녁 집회가 있었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으나 그러나 나의 발걸음은 그곳을 향했다.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누가(윌리엄 홀란드 - 참고) 읽고 있었다. 시간은 9시 15분 전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 감동이 왔다. 내가 지금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 나의 구원에 대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확신이 생겼다."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그리고 영광입니까! 또 얼마나 놀라운 경험입니까! 그는 이 순간의 정확한 시간을 알았습니다. 9시 15분 전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노력도, 공로도 필요 없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자기의 죄가 사함받았다는 것, 하나님께서 영원히 자기의 죄를 도말하셨다는 것, 그것을 믿은 것입니다. 구원이 믿는 즉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인은 하였으나, 시인했을 뿐만 아니라 설교까지 하고 교회에서 배척을 받았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을 때 마침내 영광스러운 순간이 왔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 요한 웨슬레의 산 믿음의 열매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마음의 평강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에서의 해방이었습니다. 평안에서 우러나오는 희열과 성결이었습니다.

독자여, 당신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평안이 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까? 당신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성결합니까? 죄의 권능을 벗어버렸습니까?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지워버리셨다. 지워버리신 그 죄의 권능마저 없이 하셨다. 옥문을 깨뜨리시고 나를 해방시키셨다."

 

당신의 생활에 있어서도 죄의 결박과 사슬을 모두 끊어주셨습니까? 당신의 마음은 깨끗합니까? 이 모든 일을 주께서 요한 웨슬레를 위하여 이루셨다면 당신을 위해서도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 구원얻은 숱한 무리들의 영적 모범이었던 요한 웨슬레가 이렇게 하여 새생명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심과 열심과 행사를 논할 것같으면 사도 바울에 못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바울은 산헤드린의 회원이었고 웨슬레는 영국 국교회의 안수받은 성직자였을 뿐입니다. 두 사람 다 많은 교육을 받았고, 두 사람 다 종교적으로 극히 헌신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구원받지 못했고 중생하지 않으면 안될 죄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그 영혼은 여전히 구원을 받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다면 독자여,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영으로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친히 증거하십니까?

 

기독교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웨슬레야말로 누구보다 앞장서서 할렐루야를 선창했을 것입니다. 어디 웨슬레 뿐이겠습니까? 그럴 사람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원의 체험이 없는 기독교 신앙은 열매없는 껍데기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기독교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고 종교생활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생명이 없는 종교인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닙니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삽니까?

 

부디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구원>(전도출판사)
 
출처: http://separati.cafe24.com/sb2education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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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과 집단에 포로된 성경을 해방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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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펄전 목사님의 대해서질문합니다

 

제발 반기독교인분들은 질문에 답하지말아주세요

 

스펄전목사님에대해서 잘알거나 책을많이읽어본사람만 답해주시길바랍니다

 

어떤목사님이 중생의증거는 삶아가는 삶이라고 합니다

 

근데 스펄전목사님도 이말을햇다고하는데

 

스펄전목사님이 중생의증거는 살아가는 삶이라고 햇나요?

한적이있다면 어떤책에서 했는지 아니면 글좀 복사좀해주세요 ㅜ





답변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스펄전...

하지만 설교자에 관심두기보다는 예수님께 집중하시기를 바래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사 복음서에 계시된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증인이 된 사도들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서신서에 사도들이 남긴 기록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것일까요?

 

이것을 알고 이것에 집중하는 것이

설교자가 무엇을 말했는가 아는것보다 천배는 좋습니다.

 

거듭남(중생)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한 복음 3장에니고데모를 통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스스로 찾아서 읽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목사들의 설교 수천편을 듣는것보다

님의 신앙과 믿음과 구원에 대하여 유익할 것입니다.



 2011/01/29 -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알아야할 진실...불편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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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질문  

 

이곳에는 장로교인들이 가장 많은 것 같아 특별히 질문드립니다.

한국의 장로교는 하나였는데 1945년 해방후 신사참배 문제로 1차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후 합치고 재분열하고 합치고 또 분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장로교 교파 족보를 작성하지 않으면,

그 수를 알수 없고 체계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많아 졌습니다.

 

고신만 하더라도 분파가 10개나 됩니다. 고신 ,고려, 계신이 큰 분류이고,

여기에서도 또 갈라져 나와 제가 아는 분파만 10개입니다.

교리나 신학사상은 현재 100% 일치합니다. 다른 것은 교권 싸움입니다.

저는 통합고신을 간절히 바라지만 노인네들 만나 대화해 보면 고집불통입니다.

다른 장로교에도 합동, 통합, 백석, 합신,대신, 기장 등등 이름도 다 모르겠습니다.

장로교만 유별나게 이렇게 분열이 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고민상상"님께서 말씀하신 "화해와 일치"라는 감리교 모토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침례교 등 다른 교단들은 많아야 분파가 2~3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교단들의 신학 사상은 인본주의와 처세술이 많이 개입된 것으로 압니다.

장로교는 말로는 신본주의를 외치지만, 알고 보면 인본주의와 처세술도 강합니다.

장로교는 세계적으로 볼 때 소수 교파에 불과하고 한국에만 특이하게 많습니다.

프랑스의 칼빈으로부터 나와 영국에서 자리를 잡다가 미국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미국에서 장로교의 교세는 카톨릭, 침례교, 감리교, 오순절교, 몰몬교, 안식교, 통일교,

여호와의증인 이런 식으로 해서 1%나 될까 모를 정도이고 미국에서도 분파가 많답니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오신 교수님 왈

"장로교에는 뭔가가 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말씀하시던데~

깡다구 철학이 있는 것인지? 고집불통 사상이 있는 것인지? 신학을 너무 연구해서 그런지?

신본주의 강조적 신학 때문에 그런 것인지? 칼빈 사상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뭏든 저부터 자기 주장이 너무나 강하고 대화와 타협이 잘 않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앞뒤가 꽉꽉 막히고 외골수라야 신사참배 거부도 하고 순교도 할수 있는 것인지?

 

하나님 적당히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분열은 않하거든요...

구세대 열성을 가진 순복음이나 신세대 열성을 갖춘 성결교나 이들도 표면적 믿음은

대단하지만 분열이 없습니다. 믿음의 열성과 분열과는 무관하다는 뜻인데...

이번 WCC 부산 개최 문제로 인한 결과를 두고 봐야겠습니다.

또다른 교회 분열의 불씨이니까요...장로교만의 심각한 분열 원인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답변  

 

가장 큰 원인은 장로교의 창설자라고 해도 되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엉터리 신학때문이지요.

장로교 개혁주의분들이 화내시겠지만....

 

칼빈의 생애와 삶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 부터 무례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라고 욕먹는 원인이 고스란히

칼빈의 사상에 들어있습니다. 

 

가히 개신교의 교황이라 할만합니다.

 

특히 한국 장로교단 가운데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다며

칼빈 도로를 만들자느니 오만 법썩을 떠는 것을 보면 기이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지요

 

칼빈은 원래 카톨릭의 교리와 사상에 정통한 사람이며

법학을 전공한 수재입니다.

 

특히 교부들의 사상과 신학을 잘 파악한 종교적 천재성을 타고난 인물이죠

어거스틴의 사상에 정통하였으니 당연히 카톨릭에서 나왔으나 교리와 교회론

구원론등(더구나 목사라는 신종 성직자 계급을 체계화시킨 인물)을 고스란히 수용하였지요

 

그는 개혁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당시 카톨릭의 주교들과 서신 교제를 통하여 교회일치화를 힘썼습니다.

칼빈 신봉자들은 그가 자기의 사상과 교회론과 교리속으로 카톨릭을 흡수하겠다고 일치화를 시도한것이라

변호합디다만...글쎄요...

 

아무튼 그는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 없답니다.

그러나 그의 반성경적인 성화론과 성령론, 기독교강요가 마치 성경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장로교에서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가합니다.

그러니 칼빈의 사상과 교리를 반대하면 이단자로 몰려서 곤란해질 수 밖에요.

 

단언하건데

칼빈의 교리와 신학은

예수님과 전혀 다른 열매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아는 이들이 소수라는 것이죠

 

어쩌면 안티 기독인들이 그 부분에서는 좀더 냉철하게 칼빈을 비판하는데 우수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목사옷 입은 이들에게 칼빈은 결코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목사자리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찌하든지 칼빈을 수호하여야할 것이기 때문이죠

 

칼빈이 오류라고 인정을 해버리면

목사들 전부 오류의 산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칼빈을 안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뒤집어서라도 칼빈은 오류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죠

 

장로교는 칼빈의 망령을 벗고 환골탈퇴를 해야 하는데...

어렵지요

 

그동안 누려온 목사와 장자교단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기가...심히 어렵겠지요.

 

<마태복음16: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종교개혁자 칼빈의 사상과 신학과 교회론의 정체...
Re:칼빈의 교회관(로마 카톨릭을 이단이라 부르는 일에 관하여)
존 칼빈, 그는 누구인가? 과연 로마 가톨릭을 반대한 개혁자일까?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정말 믿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제가 말이죠.. 모태신앙인데도..ㅠㅠ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국 또는 지옥에 간다고 흔히 그러는데 그러면 마지막 최후의 심판때 죄인과 악인이 다시 부활하잖아요 ,,, 그럼 그 심판 전까지는 어디에 있는거지요>

만약 죽은 즉시 천국에 간다면 다시 심판 받고 천국에 가는건 이상하지않나요>

목사님께도 여쭤봤는데 죽으면천국또는 지옥에 간다고 그러시더군요... 목사님꼐서 말씀하시는 곳은 '잠자는 자'들이 주님이 다시 부르실때까지 대기?하는 곳인가요?

너무 헷갈리네요

요점은 사람이 죽은 즉시에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전 장로교에열





답변  

 

 모태신앙이시군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 이것이다 하고 정확하게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가복음23장>
 39.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42.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4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달린 두 사람의 강도와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속에서 육체적으로 3 사람이 죽었지만

예수님과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한 한 강도는 낙원으로 옮겨졌고

끝까지 예수님을 거절한 한 강도는 낙원이 아닌 지하 음부에 처해졌습니다.

 

물론 지하 음부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추론한 것이죠

 

동일하게 육체는 땅에 묻힙니다.

믿는 자나 안믿는자나 동일하게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즉시 천국과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다시 성경을 볼까요?

 

<요한 계시록 20장>

 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13.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14.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렇게 된답니다.

 

그런데 사실 질문자께서 가장 중요하게 관심을 두셔야할게 있습니다.

그것은 질문자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사실입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지금 현실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모태신앙이라시니 성경도 잘 아실것이고 더욱이 교회에 대하여 많이 아실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질문자의 내용을 보아하니

구원에 대하여 아직 분명하게 점검을 하셔야 하지 않나 조심 스럽게 생각이 듭니다.

 

단지 모태신앙이며

집안이 기독교집안이고
장로나 권사나 직분이 있다해서 구원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좀더 거칠게 말하자면,

교회 평생을 잘 다니고 모범적인 기독교인이라해도

그러한 삶은 단지 경건한 종교인일 수는 있어도

예수님과 친밀하게 연합된 관계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여 주여 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단지 입술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겉사람의 어떠한 행위나 의로움이 그의 믿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종교인으로서의 모습일뿐...

 

다시 새롭게 성령으로 태어난(거듭난자) 것하고 유사하지만, 비슷하지만...

기독교인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경을 함께 보자면...

 

<요한복음3장>

 1. 바리새인들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들의 치리자더라.
 2. 그가 밤에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기적들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 하매 

 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4.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나이까? 하매 

 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

 

질문자께서도 아마 이 말씀을 아실 것이고 또 설교시간에 들었을줄 압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질문자께서 이해하신다면 좋겠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공로와 모든 종교적인 경건함과 아무런 관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의롭게 되어지는 것 뿐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의로워진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랍비였던 니고데모(랍비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구약 성경에 능한 자들,전문가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종교적 전통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못 박으십니다.

교회충성하고 봉사하여 인정받는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하고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하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자께서는 스스로 이 질문에 대답하셔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이 거듭남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시고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가 없습니다.

 

엄마 아빠의 신앙과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 대신 해줄 수가 없습니다.

님이 스스로 단독자로서 예수님과 대면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죽음 이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올해에는 이 구원의 문제를 꼭 확인하시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사시면서 복음을 나누기를 소망해봅니다.

 

(참고: 필자는 구원파가 아닙니다. 오해하신 분들이 있으셔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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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지금시대에..

 

하나님이 한번 몸이 불편한 상태로 살아봤으면 좋겠다

추한몰골에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살았봤으면 좋겠다.

하고싶은건 많은데 돈이 없어서 못하는 져엇같은 심정을 느껴봤으면 좋겠고

사랑하고싶은데 자신의 못생긴 추함때문에 다가가면 피하고

사랑한번도 못하는 그런 소외되는 삶을 겪어보면 좋겠다

그런걸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비참한 삶을 겪었음 한다.

울면서 기도해도 달라지는게 없는 ㅈㄹ같은 삶을 겪어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소망하는거 버리고 뜻하는거 버리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 지옥안가고 구원얻을수 있다는

미친소리나 하는 그러 신 밑에서 살아봤음 좋겠다

 

그래야 이런 처지의 상황에 놓인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테니까

 

그런데 자기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그럴이유가 없겠지.. 역겨운새끼.

 





답변  

 

님이 억울해 하는 그러한 삶이 사실이라면...

님보다 더한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뭔가요?

 

마치 님은...

님 혼자서 세상 모든 불행을 다 안고 사는 것처럼 자기 합리화를 하시네요?

 

착각하지 마세요

님이 그렇게 성질 부리는 시간에도

이 지구촌 구석 구석에는

님보다 열배 이상의 엄청난 고통과 절망적인 환경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남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감사함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답니다.

 

그러면 그들이 전부 정신이상한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님이 지금 사치스런 투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종교를 불문하고

님보다 더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요

그들은 님처럼 욕할 줄 모르고

남 원망할 줄 모르는 바보가 아니랍니다.

 

하나님 탓하기 전에

님이 스스로 생각을 바꾸시는게 더 현명할 것입니다.



님은 정말 멍청한 바보요

미련한 자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암튼 님이 그정도로 절망적인 상태라면

그것은 님이 스스로 해결해야할 숙제요

 

각자 주어진 인생

한번 뿐인 인생이라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지요

종교에 기댈 필요도 없고

 

홀로 서는 거라오

 

다만 조건이 좀 님이 비교할 때 억울하겟지만...

모두가 일등이며

모두가 돈많고 잘생기고 예쁠 순 없으니까...

 

님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 외엔 없는 것 같소.

 

님이 하나님을 힘것 욕하는 그 힘으로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시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힘으로 더욱 최선을 다해 살아야하지요

 

하나님은 모든것을 동일하게 주었답니다.

왜 모든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난 죄 없다고 합리화 시키죠?

 

인간은 다 억울하고 불쌍한 존재랍니다.

다 자기 멋에 살기도 하고요

 

님이 문제요

님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이 문제요

 

님은 엄청난 욕심쟁이라오

그러니까 남의 것을 부러워 하고 비교하며 탐을 내는 것이지요.

님에게 있는 것을 잘 찾아 보시오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만의것이 한가지씩 있기때문이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오

남이 대신 찾아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그것을 찾아야 한다오

 

그러니까

이렇게 원망할 힘이나 시간이 있거든

그 시간과 힘을 님 스스로의 소중한 것을 찾는데 쓰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승자는 원망하기보다

지금 있는 기회를 보고 힘을 내는 그사람입니다.

 

패자들은 이미 주어진 그 기회를 놓치고 엉뚱하게 남 탓만 하는 자들이지요

지금이 기회요

님을 스스로 돌아 보세요

이 기회를 놓치지마시고요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아래 글은 전북CBS 자유게시판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바로가기 >>> 클릭 !

 

 

비성경적인 국내 주요교파의 목사제도 1

초기 교회시대의 지역교회는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모습으로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 당시 장로와 감독은 같은 사람이었으며, 교회의 직분은 오직, 장로 또는 감독 그리고 집사, 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도시대 이후, 2세기부터 서서히 장로와 감독이 구별되면서 장로들 중에서 한 사람을 우선하여 감독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A.D.150년 이후에는 감독제도가 전 기독교계를 휩쓸면서, 감독이 교회를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되는 성직자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2세기말에는 이러한 성직자인 감독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어 교회의 모든 예식을 집전했는데, 이 성직자들을 사제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사제가 나타나기 전, 초기 사도시대와 속사도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누구나 동일한 신분으로 영적인 제사(벧전2:5)와 찬미의 제사(히13:15) 등을 드렸다.  그 뿐만 아니라, 신자들 개개인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제사장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던 것(딤전2:1)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경에 모든 신자는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종, 곧 주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실례로써 로마서 6장에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 여기에 나오는 ‘너희’는 ‘목사나 성직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또한 고린도전서 7장에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니(고전7:22).” 여기서도 모든 신자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것은 요한일서에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라고 씌어 있는 것에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종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소위, 목사나 신부나 주교와 같은 성직자들이 주장하듯이 “자신들만 하나님의 종 또는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이며, 평신도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그야말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신자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삶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했으며, 또한 교회직분을 가진 장로들이나 집사들 역시 그러했다.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로마서 등에는 전부 20가지 정도의 은사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도 당시에 생계를 꾸려나가며 모임에 참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우주적인 몸된 교회를 위해 선교활동을 하는 은사를 가진 자들은 예외적이었다. 예컨대 사도바울과 바나바 등과 같은 경우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법으로 물질적 공급을 책임지셨다. 그렇더라도 바울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익힌 천막 만드는 기술로,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을 알 수 있다(살전2:9).
초기 교회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교회에서 고정 월급을 받는 목사와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성경적인 국내주요교파의 목사제도 – 2

교회사를 통해서 어느 시대에나 성경의 원리에 충실한 지역교회는, 상술한 바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지역교회에서 만찬예배를 드릴 때에는 모든 신자가 예배를 드리는 동일한 제사장으로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질서있게 누구나 찬송을 택해 부르고, 누구나 떡과 잔에 대해 감사기도를 하였다.


또한 기도집회시에도 누구나 동일한 제사장으로서 기도할 수 있었다. 단지 말씀집회에서는, 가르칠 수 있는 직분을 가진 장로나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교사들 중에서 둘이나 혹은 세 사람이 말씀을 전했던 것을 볼 수 있다(고전14:29). 그리고 신자들은 공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제사장 직무와는 별개이며 은사나 직분을 가진 자가 담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이러한 지역교회에는 두사람 이상의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디모데전서나 디도서에 나오는 대로,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에서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너희도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복수장로체제에서의 교회 장로들은 목자로서 양무리를 치며(벧전5:1), 영적인 인도자들로서(히13:7) 지역교회를 다스린다(딤전3:5). 여기서 장로의 여러 역할 가운데 ‘목자로서의 양무리를 치는 것’도 오늘날과 같은 담임목사의 역할이 아닌 성경적인 ‘장로의 역할’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목자(목사로 오역)의 은사는 장로의 여러 역할 가운데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과거 16세기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성경에서 ‘만인제사장’의 진리를 발견했다. 당시 루터나 칼빈 등의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인 사제직의 개념을 거부했으며, 또 ‘사제’라는 호칭을 싫어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가톨릭의 사제, 즉 신부를 대신하여 교회에서 “말씀과 성례”를 주관할 새로운 직책자로서 ‘목사’라는 용어를 도입했다(교회가 없다161쪽,대장간출판사,프랭크바이올라지음). 그리하여 나중에 개혁자들을 중심으로, 설교자 양성과 신학 연구를 위한 신학교가 생겨나면서, 거기서 학위를 취득하고 안수 받은자들에게만 목사자격증을 수여하면서 목사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개혁자들은 이렇게 생겨난 ‘목사의 직책’이 신적 능력과 권위를 가진 성직자로 인식시켰다.

이와 같이 하여 목사제도가 생겨났으나, 그 이후 교회에서의 성찬식과 세례 등, 교회 전반에 걸쳐 개혁자들 간에 견해가 서로 달랐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 노선이 크게 둘로 나누어져 한 부류는 루터를 쫒아 루터교회를 형성하게 되었고, 또 한 부류는 칼빈, 쯔빙글리, 존 낙스를 쫒아 개혁 장로교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후 영국에서는 루터교회와 유사한 영국국교회가 생겨났고, 나중에는 영국국교회에서 쫓겨나온 청교도들에 의해 회중교회가 형성되었다. 이후 18세기에는 존 웨슬리에 의해 감리교가 그리고 연이어 침례교, 오순절 교회, 구세군, 성결교 등의 교파가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성경적인 국내주요교파의 목사제도 - 3


오늘날 한국의 주요 개신교파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 등이 있다. 그리고 각 교파마다 나름대로의 목사제도가 그들의 헌법에 나타나 있는데, 이러한 각 교파의 목사제도는 성경과는 거리가 먼, 비성경적인 제도로서 많은 폐단과 모순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최대의 폐단은,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파의 목사들은 목사라는 직책을 ‘성직’이라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구한 교회역사를 가진 서구나 북미의 경우에는 신자들의 만인제사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행으로 인해, 그 나라들의 목사들은 성직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편이다. 단지 비성경적인 일부 종파나 오순절계통 등에만 그것이 있을 뿐이다.


반면에 역사가 짧은 한국의 경우는, 기독교가 전통적인 무속적 기복신앙과 결부된 한국식 기독교라서, ‘목사는 곧 성직자다’ 라는 개념이 특히 강한 편이다.


최근에는 일부 신자들의 ‘만인제사장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인해, 예전보다는 성직에 대한 개념이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인식이 요원한 실정이다. 그 예로서, 성결교회(헌장 제52조,목사의 직분)와 순복음교회(헌법 제36조,목사의 의의)에서는 자기네들 헌법에 ‘목사는 성직’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 중에 성결교는 거의 국내의 자생적인 교단이라 성경과 외국의 교회헌법에 대해 잘 몰랐으며, 또 순복음교회도 오순절계통이라 교회 역사가 타 교단에 비해 짧아 ‘비성경적인 성직자제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의 나머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의 헌법에는 그나마 ‘목사를 성직’이라고 기록해 놓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고, 또한 같은 교단인 영국이나 미국 등의 헌법을 모본으로 해서 자기네들의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성경이나 헌법에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국내의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목사들 대부분은 ‘목사는 성직’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고질적으로 머리에 박혀 있다.


그것은 마치 ‘십일조 헌금제도’가 자기네 헌법에조차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십일조를 바치라’고 강조하고 있는 현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목사를 성직으로 착각하는 정신나간 목사들이 한국의 기독교를 부패시키고, 자기 교인들마저 생명의 길이 아닌 사망의 길로 잘못 인도해 왔던 것이다.


이런 사이비 목사들은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목사’라는 단어가, 과거 개신교 지도자들에 의해 헬라어 원어성경을, 의도적으로 ‘목자’를 ‘목사’로 오역시킨 사실도 모르고 있으며, 심지어 성경에 ‘목사라는 존재자체’가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신학교 학위와 목사자격증이나 안수증 등이 있어야 교회를 세우거나, 기존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비성경적인 국내주요교파의 목사제도-4

이런 비성경적인 목사들이, 늘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강조하는 말이, 목사는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 또는 주의 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종, 곧 주의 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만이 하나님의 종이니, 주의 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개신교 목사들은 ‘모든 신자가 주의 종’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교인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만 주의 종이라고 자처하며 신자들을 속여 왔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을 일인독재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술책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나 북미의 목사들은 한국목사들처럼 일인독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설교에만 치중하고, 나머지 교회재정이나 심방 등은 목사가 아닌, 장로나 집사들이 전담하며 목사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목사들은 교회내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전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또 이것을 헌법에 실어놓고 그 권한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시때때로 교인들에게 목사로서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주입시킨다. 예컨대 “주의 종은 하나님의 소관이니 주의 종을 존귀히 여겨라, 하나님은 반드시 주의 종을 통해 역사하시며, 주의 종에게는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다” 등이다. 그리하여 신약의 목사를 구약의 선지자나 제사장, 또는 신약의 사도들에 해당한다고 터무니 없는 거짓 주장을 하며 자신이 성직자임을 강조하며 교인들을 세뇌시켜 왔던 것이다.

둘째는 목사 자신들의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감추기 위한 수법이다. 국내의 수많은 목사들이 돈과 권력과 불륜에 연루되어 드러난 죄악상은 부지기수다. 그리고 그런 범죄를 저지런 목사들은 당연히 사죄하고 참회하면서, 죄과를 치르고 일선에서 물러나 근신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목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들은 “주의 종은 주께서 직접 알아서 하니까 교인들이 가타부타 하지 말라, 주의 종을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면서 교인들에게 공갈과 협박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셋째는 목사자신들이 목회를 하다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변명이나 도피의 구실로 삼기 위한 것이다. 목사들 중에는 교회행사나 교회건축 등,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다가 실패했을 경우,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럴 때 그들은 “주의 종은 주께서 판단하시니 교인들이 함부로 주의 종에게 왈가왈부 하지 말고, 주의 종의 영적권위를 인정하고 입을 다물어라, 주의 종을 간섭하는 사람치고 잘된 사람 없다”고 거짓 권위와 억지를 부리며 당면한 위기를 피해나가기 위한 수법으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비성경적인 국내주요교파의 목사제도-5

이제, 국내 주요교파의 헌법에 나타나 있는 목사의 직책과 권한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순복음계통의 기하성 헌법 제36조에
“목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중에 있는 교회의 사자이며, 복음의 사신이며, 제사장이며, 교회를 위하여 받은 성직이다. 목사는 복음을 전파하며 예배를 인도하며 성례를 거행하며 교회를 치리하는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런 성직이다” 라고 씌어 있다. 여기에 성직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있어 순복음교회가 개신교 헌법 중에서 가장 독재성의 면모가 강한 것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침례교파는 다른 교파와 달리, 교회내의 성직자 제도를 반대하고, 나아가 목사의 권위주의와 독재를 거부하고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믿는다.
그리고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으로 인정하지만, 호칭은 장로와 감독보다는 목사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침례교회는 민주적인 조직 형태인 회중제도로 운영되기 때문에 다른 교파에 비해 상당히 목사의 성직에 대한 개념은 희박한 편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헌법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목사의 직책에 대해
목사는 회중예배를 인도하고, 침례와 주의 만찬 등 의식을 집례하고, 설교하고, 교회의 행정적인 업무를 관장하고, 교회의 여러 기관들의 활동을 지휘 감독하며 교회의 대외적 활동을 담당한다. 또한 목사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성령의 도구로서, 개교회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침례교의 목회론에 서술되어 있다.


침례교회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기와 같이 담임 목사가 교회의 대표자가 되어 일인 목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머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헌법도 침례교보다 훨씬 더 목사의 권한이 일인독재체제로 가득차 있는 실정이다.

성경에도 지역교회에 일인독재자와 성직자제도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요한삼서 11절에 나오는 디오드레베는, 그가 속한 교회에서 일인독재자이며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사도요한과 그 일행들의 교회방문을 거절했으며, 더욱이 방문을 환영하는 참신자들을 교회에서 내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장 6절에는 ‘니골라’ 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 뜻은 “백성을 정복하다 또는 일반신자 위에 군림하다” 라는 뜻으로, 한사람이 전권을 가지고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인 ‘성직자’를 나타내는데, 학자들은 이 ‘니골라당’이 바로 성직자제도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인간들의 편의에 따라 고안해 낸 목사제도는 비성경적인 것으로서, 교회내에 일인독재체제로 제도화 되어있어,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담임목사의 일인체제로 제도화 되어 있음으로써, 혼자서 모든 성례를 주관하고 집행하여 만인제사장직이 수행되지 못하고 원천봉쇄되어, 신자들을 벙어리 제사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목사 혼자서 설교를 독점하고 가르침으로써, 신자 개개인이 깨달은 성경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길이 차단됨으로써 믿음의 성장을 저해했다. 그 외에도 신자들 각자가 다양한 은사를 활용할 기회가 없어지면서, 대부분 일요일에 설교만 듣고 오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게 했다.



이처럼 일인목사체제는 독재로 흐르기 마련이며, 교인들은 자기네 목사의 말만 듣고, 또 그를 맹신하는 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목사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어,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 아닌, 담임목사가 실제주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대로, 신약교회가 동등한 2명 이상의 복수 장로들의 지도력에 의한 교회통치체제로, 지역교회내의 권력에 대한 시험을 막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동등한 장로들에 의한 억제와 균형이 가장 좋은 형태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리셨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한다.

영국의 역사가 엑톤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했다.
상술했듯이 국내 개신교의 목사제도는 일인독재체제로서 그러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자기네들의 헌법이 보장해 주고 있다. 또한, 국내 주요 교파의 헌법에는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가득차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해 일부 양심적인 목사들은 잘못된 자기네 헌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부르짖기도 한다.


그러나 소위, 교계에서는 “예수님이 와도 다른 것은 몰라도 교회 헌법만은 못 바꾼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내 교회는 썩어있다. 따라서 비성경적인 ‘개신교파의 목사제도’ 역시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기독교계는 믿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사랑그리고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썩어서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중독된 기독교인들과 그들을 이용하여 한것 권세를 누리는 간악한 목사로 자칭 하나님의 종이니 일을 한다고 사기치는 자들에게서 나와야 산다. 목사들의 이러한 불의함을 위하여 당신이 아무리 진정으로 봉사하고 섬기고 헌금하고 새벽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교회와 목사를 위하여 헌신한다고 그것이 당신의 구원을 보장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아무리 유능한 목사요 설교의 달인이며 교회건물 부흥시킨 목사로 사람들에게 인기와 명성과 존경과 부러움을 사는 목사를 우리 목사님이라고 칭찬하고 그 목사를 위한 모든것에 충성한다고 당신의 구원이 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입증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라!

 

구원은 교회가 대신 주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자랑하는 목사가 주는 것도 아니며 당신이 건축헌금해서 멋들어지게 세워진 건물이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당신의 장로요 집사요 목사요 따위의 제도적 신분과 직분이 당신의 구원을 보장할거라 착각하지도 말라!

 

당신이 일평생을 교회와 목사를 위하여 수고하고 기도하고 헌신하였다고 그것이 당신의 구원이 될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당신의 가정이 전부 교회의 교인이며 집사요 장로요 권사요 목사요 전도사라고 해서 그들의 구원이 보장될 것이라고 하는 착각에서 빨리 깨어라!

 

 

이 말이 듣기 싫고 괴롭겠지만.....

이것은 당신이 꼭 들어야 하고 확인해야할 사실이다.

 

죽기전에 반드시 확인해야할 것이 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아래 제목을 클릭하세요~!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알아야할 진실...불편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Posted by 비회원




질문  

 

 행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알지못하는 신이 이렇게 많은데 참 종교를 찾을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객관적으로 찾을수가 있을지 좋은 방법을 바랍니다.





답변  

 

참 종교는 없어요~

그러나 좋은 종교는 무지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은 별로 없지요

이들은 세상속에 살지만 좁은길로 가는 자들이며

세상의 영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기에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운데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자리에 있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가 아니라 낮은 자리이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악인의 꽤를 쫒지 않기 때문이며

 

높아지고자 하지 않기에

사람들의 눈에 들어나지 않지요

 

그러다보니 유사품들의 홍수가 마치 그러한 종교인들과 모임이나 단체가 참 종교인양

비쳐지기 일수입니다.

 

대부분 이러한 모양에 사람들이 쉽게 속고 그것을 인정하며

그러한 모임에 소속하기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것에서 한시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숨이 막혀서 죽은 자들의 모임가운데 한시도 머물 수가 없기 때문에...

홀로 그 자리를 나와 광야로 가는 것입니다.

 

광야로 가야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1/01/28 -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TAG 광야

 

광야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예수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우리 칸타타형제와는 일면식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놀랍게도 사이버 상에서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향 카페에서의 서로의 글을 통한 만남이었지만,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주의 은혜 안에서 같은 믿음과 생각을 공유한다니 정말 신비입니다.

 

 

비록 각자 살아가는 환경과 인생의 여정이 다르고 질곡과 연단의 과정들이 다르다 해도
한 주님 안에서 한 성령으로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나누고 전한다니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다만 소리칠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면 대안을 내 놓으라고 따집니다.


대안은 거기서 나오는 길입니다.


나오면 나머지는 주님이 인도하시고 보여 주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대안은 주님이 하실 일이지 사람이 하는것이 아닙니다.


개혁자들이 대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선지자들이 대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다만,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한 자이지 대안을 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각자에게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각자의 삶가운데 주님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께서 친히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과 다른 거짓을 숭배하는 자들과 그러한 모임안에서 계속 머물러 있다면?
주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 입니다.


광야로 나올 때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침반이란?
지도란?
네비게이션이란?
광야의 길로 가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순례자의 여정으로 가는 자들을 위하여 정확하게 성령의 이끄심이 작동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안입니다.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결코 대안이신 주님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오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는 이들을 향하여
저는 과감하게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나오면 나머지는 주께서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두 길이 존재합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십자가와 성령의 이끄심으로 사는 삶과


여전히 자기 욕심과 자기 신념으로 똘똘 뭉친 종교적인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 님을 따르는 삶과...


보이는 제도나 형식과 종교적인 화려함과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과
자기 의로 만족하는 기복적인 삶으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육신적이고 정욕적이고
종교적 우월감에 빠지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 오실 때가지 두 길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로서 아벨의 길이냐


아니면 자기 중심적인(인간 중심적가인의 길이냐 입니다.

 

주님을 따르노라 하면서 결국은 사람이나 어떤 사상이나 철학적인 사고를
복음의 진리 보다 더 우위에 두고자 하면 그는 은혜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율법 준수와 계명과 자기 관리에 의하여 증명하는 삶이기 때문에...

 

 

그러나 모든 사상과 이론과 세상 초등학문을 배설물과같이 여기고
오직 십자가와 복음의 진리로만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주의 공로만을 바라며 의지하기에 행함이나 자기 공로나 업적 따위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면서,

나는 무익한 사람이라 하며

오직 주의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감사하며
순례의 길과 좁은 길로 가기를 즐겨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바를 모르고 오직 말씀을 따라 갈 때

비로소 주님이 친히 앞서 행하시고 보호 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삭과 리브가의 보호장막을 떠나서 광야로 갈 때

비로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이며 야곱의 사닥다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주의 강권하심으로 떠날 때
비로소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에서 만나와 매추라기를 맛 본 것이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성령으로 구별하여 나실인으로 태어 났지만,
그의 부모의 가정이 아니라 빈들이며 광야에서 자란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 같이,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서 주님을 만나러 광야로 간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왕궁이나 부자들과 권세자들이 있는 곳에 계시지 않고 광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주리시고 목마르심과

인간으로서 가장 극심한 고난 가운데 마귀의 시험을 온 몸으로 맞이하심 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 입니다.

 

마귀가 던진 유혹이 무엇입니까?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며,
기적, 혹은 표적을 보이라는 요구(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이며,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자기에게 경배하라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유혹들을 말씀으로 거절하셨습니다.


거절하심입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현대 기독교를 본다면?
절묘하게도 마귀의 유혹을 덥썩 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질 숭배와 기복주의 신앙의 넘치는 현상들...
자칭 주의 종이라며 온갖 세속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자들...
뷰자되는 것이 하나님이 복주심이라고 큰소리 치는 목사들...
거기 어디에 주님의 길이 있는지요?

 

주님의 사랑이 부족하여서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을 향하여서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화를 선언 하셨을까요?


그들의 조직과 신념과 체제는 주님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바벨탑처럼 쌓인 것입니다.


견고한 종교의 영으로 성을 쌓고 만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더 이상 관심 두지 않으십니다.


이미 창세기의 바벨탑을 더 이상 쌓지 못하게만 하신것으로서 심판은 시작 된것입니다.


다만 흩으신것입니다.

 

흩으시고 내어 쫒으신 다음에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몰아가시면서 거기서 찾으십니다. 모으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계속해서 서로 모이고 단결하자고 합니다.


화합과 일치를 주창하며 세계 평화를 위하여 모이자고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흩으셨는데
사단은 기를 쓰고 모이자고 합니다. 흩어짐을 면하자 합니다.


하늘 꼭대기까지 닿도록 견고한 성을 높이 쌓아보자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 없이 영생을 구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 공학과 유전학과 인간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서

복제도 하고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서 새로운 나를 복사해서 육신은 버리고

새로운 나로 이전, 복원 시켜서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심판이 온다해도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과학으로 버틸 수 있으며
하나님과 비견할 자신감으로 충만한 것이 바로 사단의 속셈입니다.

 

사단이 가장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라는 집단이 가장 좋은 장소이며 센터입니다.


거기에 충실한 부하들이 종교 먹사들이며 그들과 짝 하는 자들이 신학자들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좋고 하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것을 아무리 말해줘도 알아 듣는 자들은 알아 듣지만,
마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당시 복음을 전할 때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기득권 자들이 귀를 막고 이를 갈며 돌을 던져서 살인하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복음의 소리가 들려지면
악을 쓰며 비방과 회유와 물타기를 충실하게 하는 자들이 버젓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교단 교리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한술 더 뜨는 자들 가운데 꼭 믿음 훌륭한 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고 입다물고 너~나 잘하세요 하는 자들...)


자기가 추종하는 신념과 신학과 교리를,

어찌하든지 변호하고 지켜 보려는 당치도 않는 의협십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사도들이 언제 자기 사상이나 생각들을 위하여 목숨 걸었을까요?


그들은 오로지 예수 이름과 복음 때문에

모든것을 버리고 빼앗기고도 감사하며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비록 배움과 환경과 형편이 달랐지만,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는 동일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말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였고 그 십자가 복음 안에서 형제의 악수를 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내가 가말리엘의 학문을 배웠다고 자랑한적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놀랍게도 바울사도나 베드로 사도가 전한 복음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전문가인 바울과 어부출신 베드로가,

복음과 성령 안에서는 한 마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학문의 길고 짧음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며,

오직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 뿐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그러기에 대안이란 광야에서 주님을 뵈오는 것입니다.

일단 주님을 대면하면 나머지는 주께서 친히 행하실 것입니다.

 

제 글을 보고 하도 대안을 말하라 해서 이렇게라도 제시해 드립니다.

 

대안이라면 주님이 하십니다.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기를 소망하면서

 

 

2009/11/07.ⓒ사랑그리고편지.

 

Posted by 비회원




질문  

 

 안녕하세요

우리가 신앙하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한 살아서 믿는 사람은 주의 강림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의 강림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살후2: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이 말씀을 비추어 볼때 주 강림에 대하여 알기 위해서는 [배도와 멸망의 아들 ]이것을 알아야하는데

이 두가지를 성경으로 정확하게 풀어 주십시요





답변  

 

배도에 관한 것은 먼저 구약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아모스 등 여러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등진 죄악에 대하여 증거하였지요 

 

신약시대속에서는 로마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덕분에

핍박 당하던 자들이 이젠 당당하게 권력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지요

 

이미 배도의 무리들이 기득권과 야망을 위하여 로마 황제의 충실한 시녀 노릇에 압장 섰고

그 후에 주교들을 등에 업고 국가체제의 교회(로마 카톨릭체제=교황=성직자)로 배도하였지요

 

종교화로 급진전하게 됩니다.

교회는 국가의 힘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러한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움직임에 반발하여 그들로 부터 나온 이들이 있지요

도나티스트들...

 

이들의 후예들이 다양하게 각 시대를 거쳐서 저항하게 되었지요

 

재침례주의자들(아나밥티스트)왈도파 왈덴시안등....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서신서가 가장 중요한 신약교회의 교리요 권위였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권위(신약 성경)에서 인정하지 않은 여러가지 절기나 의식과 교리등을

반대하였기에 교황주의자들이 주는 유아세례와 각종 전통과 미신적인 것들을 거절하였고

그것때문에 미움을 사고 이단자로 누명씌워져 마녀사냥의 희생자들이 되었지요

 

교황의 권위를 절대화하였던 당시에 이들은 끝까지 믿음과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피 흘려 죽음으로서 믿음을 입증하였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얻게 되자

초대교회 당시 핍박을 당하던 자리에서 가해자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1세기 동안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피흘린 발자취....

 

배도의 물결이 이미 나타났었고 또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이미 팽창되었다는 말이죠

 

단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감춰진 것일 뿐....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위장하기에 능숙하답니다.^^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눈에 보이는 종교적인 경검함에서 돌아 서십시오.

 

요한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아래 관련글들을 잘 읽으시면 유익할 것입니다^^


2011/01/24 - 오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죄를 지었도다.
2011/01/23 - 하나님 보좌 우편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좌편에는?
2011/01/21 - 성인들의 신화-프란시스와 어거스틴 (필독)
2011/01/19 - 이단들이 "이단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2010/11/21 - 교회의 심장은 뛰고 있는가!<긴 글이지만 필독 추천!>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아래 답변에 질문이 있기에 생략합니다^^*



답변  

 

저는 개신교인은 아니지만 예전에 몸담고 있던 정을 생각해서 잠간 끼어들어 봅니다 ^^

질문자께서 올린 내용이 재미납니다^^ 혹시 맘에 들지 않더라도 신고는 하지 않겠죠^^

 

저는 ===> 표시로 굵게 쓴 글씨가 답변글입니다 ^,.^

 

저번 '창조론자분들 저좀 볼까요' 라고 올린 사람입니다.

 

뭐 그때는 이미 흥분해서 글을 써놓은 터라 이리저리 수습이 안돼더군요. ㅋㅋㅋㅋ

 

뭐 수정해봤자 보는이들은 별로 없을터이고. 제가 그런 종교적인건 모르니까 과학쪽으로 집고 넘어갑시다.

 

일단 창조에서부터 시작해봅시다.

 

1. 신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태를 본따 만드셨다고 하셧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남자 이신가요 여자 이신가요? 아니면 남자와 여자의 합쳐진 몸을 갖고 계신가요?

 

===> 엄마 아빠와의 사이에서 임신한 경우 아들일 경우도 있고 딸일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과학엔 빵점이라 잘 모릅니다만 부모를 외형적으로 거의 닮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부모 자식 관계죠. 심지어 발가락이 닮았다는 소설처럼... 그러니까 신이 남자냐 여자냐 양성이냐하는 것은 그리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사실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부정하고 싶은 것이 속마음이시죠^^

 

(너무 뻔한 내용이지만 과학으로 신이 증명 된다면 그 순간에 신이 아니게 된답니다^^ 너무 싱겁나요^^)

 

 

2. 인간의 종류를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라고 하시겠지만 과학을 좀더 아시는 분께서는 붉은 민족도 있다는거 아실겁니다. 아프리카에 피부색이 조금 붉으스럼한 분이 계십니다. 인도 사람들은 시커멓다기 보다는 갈색입니다. 이렇게 왜 인종이 다 다르게 만드셨죠? 그리고 왜 백인중에는 눈이 퍼렇고 머리가 노란금색인 민족이 있는거죠?

 

===> 아니 그러면 전부 똑같이 만들어야 좋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신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함이 아닐까요? 사람도 라면을 만들때 그 종류가 수십가지 입니다. 껌도 종류가 엄청나게 많죠? 신은 컴퓨터같은 로봇이 아닙니다.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자유자이시죠. 아무것에도 영향을 받거나 구속당하지 않으시죠^^ 아무리 창조론을 부정하고 싶어도 시람들의 삶과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보면 근본을 알수 있지요^^ 누굴 닮았겠습니까?

 

님의 이런 딴지성 질문은 하나마나한 것이죠. 인간의 다양함이 이러할진데 신의 능력과 창의성이야 말할 나위가 없지요

 

3. 왜 인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죠? 만약 신의 형태를 본따셧다면 얼굴이 다 똑같아야 되는데 말이죠.

 

===> 오 이럴수가! 님은 과학에 자신 있다면서 어떻게 이러한 사고를 할 수 있어요?

다 똑같아야 된다니오? 그것은 정말 비극이지요 ㅡ,.ㅡ

만일 예를 들어서 소녀시대의 맴버가 전부 똑같이 생겼다면?

모든 여성들이 전부 김태희와 똑같다면? 과연 좋을까요? 아름다움의 기준이 없는 것이죠. 님의 이러한 질문은 정말 신을 바보 멍청이로 자꾸만 만드는 것이랍니다. 일부러 그러는것은 아니시죠? ^^

 

 

4.사람은 모두가 축복 받았다고 어디선가 봤습니다.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볼때 왜 장애인들이 있는거죠?

 

===> 이 질문도 정말 맥이 빠지네요 ㅡ.ㅡ

왜 장애인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 국가별로 만족도와 행복에 대하여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님의 기준이라면 미국처럼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일등이어야 하는데 결과는 가장 가난한 나라가 일등이었습니다. 축복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신의 축복입니다. 짐승으로 태어난것이 그럼 축복일까요? 양손과 발이 없는 사람도 최고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으며 돈과 인기와 명예를 다 갗추어도 불행한 이들이 있습니다. 생각을 좀 바꾸시는게 ㅎㅎㅎ

 

5.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식인데 왜 하나님은 병이란걸 만드셔서 우리를 아프게 하시나요. 특히 감기는 왜 완치 불가능한 존재죠?

 

===> 그것은 과학이 해결해야할 문제 아닌가요? 창조를 부정하고 과학만능을 자랑하면서 감기 따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질병은  하나님이 주신게 아니라 인간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불법들이 병을 만들었지요. 자연 환경을 개발이라는 이유로 파괘하고...대량으로 소나 돼지를 양산해내고...그 결과가 각종 오염과 질병이 된 것인데 왜 하나님을 탓하는가요?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과 늘 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원인이 있지요. 과로 스트레스등...본인이 자초한 것이지요.

 

6. 유인원의 해골이 계속 발견되었는데 그 해골들을 테이블위에 전시해두었을때 어떤것은 턱이 엄청 크고 머리가 작지만 어떤것은 머리가 좀 크고 턱이 좀 작고 어떤것은 지금 우리 해골 x레이 찍어논 것과 똑같아요.

근데 골격만 봤을때 눈알 위치하고 코 위치하고 입과 귀 위치가 똑같아요. 그럼 어느게 사람이고 어느게 짐승이죠?

 

===> 어이구 참 내..물어 볼것을 물어 보세요. 그것도 구분 못하면서 어떻게 과학을 신뢰할 수 있나요? 그정도는 우숩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하나님 없이 큰소릴 치고 살수 있는거 아닌가요?

 

7.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어째서 모든 동물의 목소리가 다른건가요? 아니 사람들만 해도 왜 목소리가 다 다르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60억의 성대를 가지고 계신가여? 어떤 창법을 쓰시나요?

 

===> 위에 1~3번 질문과 동일한 내용이라 통과합니다 ㅡ,.ㅡ

 

8. 사람은 DNA 라는게 있어서 축구선수의 아들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축구의 재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축구선수의 아들은 축구를 보통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걸까요? 제 아버지의 친구분이 축구선수 이셧고 아들이 있는데 달리기를 엄청 잘합니다. 근데 저는 달리기를 엄청 못해요. 그렇다면 왜 걔는 타고나고 저는 타고나지 않은거죠? 원래 창조론의 원리는 사람은 다 똑같이 태어나야 하는데 말이죠.

 

===>이런말 안하려고 했는데요..정말 어처구니 없답니다.

(DNA는 확인해 보고 말해야죠 ...이크...실 수 ㅎㅎㅎ)

유전자가 같다고 똑같아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님의 질문이 너무 어거지인거 아시죠^^;

 

 

9. (마지막) 실제로 신이 사람을 자신의 모습과 있는 그대로를 본따서 만드셨다면. 신도 그럼 죽은거네요?

신이 자신의 몸을 본따서 만들었는데 신만 안죽으면 불공평하죠. 저희도 안죽게 만드셨어야죠 만약 살아 계신다면.

 

===>원래 안죽게 만드셨답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합니다. 육체만 소멸 되는 것이구요. 다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영혼은 영벌에 처하고 구원 받은 사람의 영혼은 영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자녀로서 사는것이고 다른 쪽은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사는 것이죠. 영원히 말입니다.

 

안죽게 하시려고 죄에 빠져 영죽을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죠. 요한복음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이번에는 역사시간~

 

1. 성경은 어디서부터 언제 만들어졌나요?

 

===> 성경형성의 역사라는 책들이 널려있지요. 하지만 님은 별루 관심 없을 것 같아서 알려줘도 소용없겠기에 통과합니다. 정 궁금하면 검색을 활용하시는 센스 ^^

 

2. 옛날 로마에서는 그리스 신들을 믿었던거 같던데 왜 갑자기 크리스트교로 개종했나요?

 

===> 콘스탄틴이라는 이교의 제사장 출신의 황제가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일 뿐이죠^^

<순례하는 교회> 나 <피흘린 발자취> 를 검색해 보신다면 알수 있답니다 ^^ 

 

3. 크리스트교로 개종했음에도 왜 로마는 망했나요.

 

===> 무늬만 기독교라고 이해하시면 된답니다.

유사품들이 많지만...이 질문도 2 번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답니다^^

 

4. 신은 왜 마호메트(맞나?) 이분을 태어나게 하셔서 이슬람이라는 다른 종교를 만들게 하셧나요.

 

===> 이것두 통과합니다 ^^ 

 

5. 신은 왜 부처를 만드셔서 중국과 한국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게 하셧나요. 결국에는 우리나라 몇몇의 목사들이 불교를 믿는 사람에 대해 악담을 퍼붓잖아요. 왜 부처를 태어나게 만드셨나요?

 

===> 아직 모르셨군요^^ 신은 종교를 만들지 않았답니다. 죄아래 팔려 불의한 길로 가며 하나님을 대항한 인간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죠. 오해가 크답니다^^ 기독교를 예수님이 만들었다고 하는 분들...오해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목사들도 큰 착각속에 허우적 거리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도덕적인 문제로 들어갑니다.

 

저번의 제 질문의 답변에서 이런글이 있었죠. 인질극이 있는데 인질은 구한건 선이지만 인질을 죽인건 악이라고 말씀하셨죠.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의 따라서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질문 갈게요.

 

1.성경에서 이런 말씀이 있다죠 '이웃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만약 거지가 자신이 먹을게 없어서 돈을 훔쳤다면 이게 과연 선인가요 악인가요?

 

===> 도적질 하는 것은 죄입니다. 거지가 돈을 훔친것은 죄입니다. 거지는 구걸을 해서 살아야하는데 그것을 망각한 것이니 그는 거지가 아니라 도적입니다. 이것을 무슨 선이니 악이니 하고 유치하게 스리 ㅎㅎㅎ

 

2.님께서 그렇게 보신다면 왜 이 세상에 법이란게 있는 건가요? 거지가 있는데 돈을 뺏기 위해 여학생을 단도로 위협해서 여학생이 심한 출혈로 다쳤다면 그건 악인가요 선인가요? 그렇다면 왜 법은 그 사람의 개인 관점에서는 안보고 악이라고 할까요?

 

===> 똑같은 것이죠. 거지는 구걸해야 거지죠. 칼로 여학생을 위협해서 돈을 뺏는 행위가 어떻게 거지입니까? 강도가 맞지요.

 

3. 만약 그 여학생이 님의 딸이라고 생각해보신다면 님은 그 거지가 돈이 없어서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다고 하시면 동정심이 생겨서 용서해주실건가요?

 

===>님은 처음 부터 단추를 잘못 맞췄습니다. 그러니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는 거죠^^ 거지와 강도를 구분 못하시나요? 정말 싱겁습니다.

 

아직 부족해 이런 질문밖에 못했습니다. 간곡히 부탁하건데 이 글과 관계가 없는 글은 신고 처리 하구요.

이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시지 않으신분도 신고하겠습니다.

자신없으면 물러서든지요.

 

===> 저는 인내심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실하게 답변드렸습니다. 신고하시건 말건 그것은 님의 자유입니다만... 이 글을 자세히 읽어 보시고 지금의 사고에서 좀더 벗어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런정도로 기독교가 허물어지지 않아요^^ 물론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지지하지도 않지만 이런 식은 님만 초라해질 뿐이랍니다.

 

차라리 성경을 더 열심히 독파하셔서 창조론을 파해쳐 보시지요^^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려면 성경을 알아야 하지 않는지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교회에 다니는 어떤 형은 유명한 직업.아직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정말 잘생겼어요 곱상하니 혼혈적으로.. 

새벽기도도 나올만큼 성실하고 독실해요.

성격도 엄청 좋으시구.

언제나 인기도 많구요..

주위에는 항상 여자분들도 많구요.

예 집도 잘 삽니다. 재벌은 아니더라도

웬만큼 살아요..

여자친구분인가 그냥 친구분인가.

정말 이쁘셨는데

두분이서 같이 여행도 가시고 그러나봐요..

 

부러워서요.너무요

제가 원하는걸 다 가지고 있으니깐..

혐오스럽게 생긴 내 자신이 살수 없는 삶이니깐.

제 자신의 초라함에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교회에 가봤자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생각때문에

안나간지도 몇달됐네요.

 

솔직히 이젠 하나님도 안믿겨지구요.

사람 차별하는거로 밖에 안느껴지구요

당연히 하나님은 인간을 차별안한다고 하겠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느낄수밖에 없고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의 바보같은 삶

하나님이든 세상이든 교회든

그만 쉬고좀 싶습니다..

 

더이상 발버둥치기도 지치네요

어차피 똑같은 삶

원하는건 다 넘어가버린 인생

쉬고싶습니다





답변  

 

그래요

푹 쉬세요~

누가말립니까?

만일 질문자가 옆에 있다면 정신 차리시라고 한방 먹이고 싶군요

냉수먹고 속 차리라고 하고도 싶고요

 

지금 님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투정을 부리는지 아십니까?

님이 내 동생이었다면 실컷 두들겨 팼을 겁니다.

정신 확 들게 말입니다.

 

님이 지금 이렇게 투정 부리는 시간에

일초마다 한명씩 죽어가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굶주림과 질병과 기아로 허덕이다가 죽어가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요.

님은 지금 사형선고 받은 자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님은 지금 식물인간이 되어 의식이 없이 중환자실에 누어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님은 오체불만족을 아십니까

님은 사실 가진것이 엄청나게 많은것을 아십니까

 

님의 사소한 욕심때문에 스스로가 비교하고 스스로가 비참해져서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하고 있다는 것을 혹시 아십니까

님은 아직 절망이 어떤 것인가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님은 사실 이렇게 고민하고 투정할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님은 너무 큰 욕심쟁이라는 것입니다.

님은 님에게 있는 것을 모르고 엉뚱하게 남의 것을 탐하는 중입니다.

님의 인생이 있는데 남의 인생을 보고 부러워 하는 멍청이라그말입니다.

 

님이 얼마나 귀한 존제라는 것을 모르는 멍청이중의 최고 멍청이란 말입니다.

 

님은 지금 눈에 보이는 허상을 실체로 아는 눈먼자입니다.

 

지금 나면서 부터 시각장애자가 되어서도 꿈을 꾸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님이 얼마나 많은 욕심으로 가득한것인가를 보세요

 

한번 뿐인 인생입니다.

님은 님의 인생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

제발 남의 인생을 넘보지 마세요

모두가 제벌일수 없고

모두가 일등일 수 없죠

 

그러나 인생의 결과는 두고 봐야 압니다.

가장 한심한 사람은 실패하여 넘어진 자가 아닙니다.

 

발에 걸린 돌을 원망하는 자가 제일 한심한 자입니다.

 

넘어졌나요?

돌을 치우세요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가는것입니다.

빨리 가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과 목적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빨리 가면 뭐합니까?

그 도착하는 곳이 절벽이며 벼랑끝이라면 말입니다.

 

좀 느리고 더디더라도

안전하고 확실한 곳을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습니다.

인물 잘생기고 돈 잘벌고 인기 있고 교회생활 잘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보여지는 겉 모습일뿐...

 

우리 인생은 죽음 이후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님의 말처럼 푹 쉬세요

그러나 만일 그것이 끝이라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외모를 보고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속(중심)을 보십니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덤이 아무리 화려하고 예뻐봐야 그 속에는 썩은 시체와 뼈들과 구더기들 뿐입니다.

비록 겉은 초라하고 볼품 없어도 그 속사람이 지혜롭고 거듭난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불에 타 없어질 것들입니다.

결국 보이는 것은 그림자요 허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진짜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믿음의 시람들과 함께 영원히 살것입니다.

님에게 지금 중요한것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얼짱 인기 돈 명예...

그런것들은 구원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도 전혀 상관 없는 것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예수님이 누구신가 구하시기 바랍니다.

님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까짓 명예 돈 인기 아무리 넘쳐나도...

그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헛된것이라 그말입니다.

 

예수님을 찾으세요

가장 귀한 보화이신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님은 지금 엉뚱한 것과 허상때문에 공연히 스스로 비참에 빠지는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을 만나서 확실한 영생을 소유하는 엄청난 복을 누리실 기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환경과 상황을 통하여서 거짓된 것에서 님의 눈이 떠지게

인도하시는 중입니다.

 

지금 간절하게 예수님은 님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 님이 대답하실 시간이며 그 기회입니다.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2011/01/24 - 내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교회를 5년째 다니고있는 한 여학생입니다.

지금까지 거의 기도 말씀읽기 이런걸 안했거든요 ㅠㅠㅠ...

근데 요즘에는 진짜 좋은 책을 읽어서 하나님에 역사하심에 확신과 하나님에대한 신뢰와 사랑하심을 굉장히 확신해서 이제 신앙생활 열심히 해보려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위를 해왔습니다.

자위를하면 음란물을 보잖아요...

보면서 하는데. 자위라는 것에 매이고 하루에도 몇번씩하고 이런게 아니라

막 무슨 이상하게 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주일에 한번 정도하는데......

그 자위행위를 해도 되는 것인지요...
한번 하면 일상생활하면서 생각나기도 하고

막 하고나서 우울하고 하나님한테 죄짓는거 같고

하나님이 내가 이러는거 다 보실텐데.. 이런생각 들고요...

그래서 오늘도 막 자위하고싶었는데 참고..

인간의 그런 쾌락에 빠지지 않으려고 참았거든요

그리고 기도로 자위에대해서 기도하고잇고......

근데 기도시작한지 2틀째라 응답이 뭔지 잘 모르겟는데

자위에대한 기도하면서 안한다고... 막그런식으로 기도햇거든요

근데 잘 모르겠습니다. 해도대는지..

교회 목사님한테 이런걸 말할수는 없잖아요 ..ㅠㅠㅠ

진짜... 너무 고민됩니다. 이거에대해서 기도해야겠어요 부끄럽지만...ㅠㅠ

해도되나요? 

진짜 진지하게..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아무한테도 못말하고 끙끙거리는 문제에요

교회다니시는 집사님들 선생님들 목사니뮤ㅠㅠㅍㅍ 진짜 진지하게 답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답변  


용기를 내어 질문한것으로 보면 앞으로 희망이 보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것이 죄냐 아니냐 하고 딱 꼬어서 말하라고 한다면 둘다 가능합니다.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죄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죄의 포괄적인 것은 물론 당연하게도

도덕적 윤리적 정서적 사회 문화적인 부분이 포함 되지요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의 본질이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항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것이고

소극적으로는 무신론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러나 입술로 하나님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수천만명이라해도

진실로 믿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확신할수 없는 것처럼...

내가 교인이고 집사요 장로요 권사요하며

교회충성하고 봉사잘하고 하는 행위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종교적인 행위들이지요.

기독교인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이며 교회를 잘 다닌다고해서 하나님을 대항하지않는것이

결코 아니라, 본인은 잘 믿는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항하는 것일 수 있다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고요^^

 

그렇다면 죄가 무엇이냐...

공개적으로 들어날 경우 부끄러운것이 대부분 죄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전부 그런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정상적으로 남녀가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을때의 관계는 죄가 아니며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이전의 관계는 당연히 부적절한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당연하게 도적질 하거나

살인하거나

간음을 하면 죄가 되겠습니다.

 

시험중에 남의 답을 훔쳐 보는것 역시 부적절하고

창피한 거죠

 

남을 거짓으로 고소하거나 모함하는 것도 그렇죠?

 

건강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성장하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행위들입니다.

 

과도한 호르몬의 분출이 그렇게 나오는 경우는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생리적인 현상의 하나입니다.

소변이 마렵거나 하는 것이죠

 

그런데 자위행위는 이러한 것과 합하여

정신적인 부분에 민감합니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과 시각적인 것의 영향

그리고 잘못된 정보 때문에 격는 부작용들을 감안해야 합니다.

 

음란성 영화나 미디어나 그림등을 보고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 영화나 동영상 그림등은 치밀한 연출에 의한 것입니다.

흥행을(돈) 위하여 연기하는 것입니다.

사실과 다르지요

쑈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영물을 한 두번 보게 되면 혼란에 빠집니다.

어른들도 그러한 것에 중독이 되면 스스로 통재하질  못하는데

아직 청소년기 때에는 더 위험하지요

 

한마디로 마음에 중한 병이 들게 되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결혼생활을 하거나 이성과의 교제를 할 때

혼동과 시련기를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성정보가 미치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런 뜻이죠.

 

요셉 이야기를 잘 아시죠?

요셉은 유혹이 왔을 때 그 자리를 피하였답니다.

지혜로운것은 일단 도망가는게 상책이랍니다.

 

가능하면 자위행위를 할 수 없는 장소에 있는것이 좋구요

그러한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음란물에 노출이 전혀 안될 수는 없겠지만

일부러 그러한 것을 찾거나 보관하거나 소유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거죠

 

정상적으로 자위행위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습관이나 중독이 된다면

먼저 정신과 육체적으로 피로하게 되고

그것때문에 일상생활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합니다.

또한 본인 스스로도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때문에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 거죠

 

악순환에 빠져서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본인도 피해가 되고 주변 가족들까지 피해가 되지요

가능하면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생각이 들때면 빨리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던지

운동을 하는 것으로 땀흘리면서(탁구,줄넘기,스트래칭등) 관심을 다른곳에 돌리는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질문자가 관심을 이미 자위에 관한 모든 정보에 깊이 노출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무엇을 보고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에...

질문자께서는 더 이상 이러한 것에 우물쭈물 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집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왜 나를 구원하셨으며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은 무엇때문이며

과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하고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사복음서)와 사도들이 쓴 서신서(편지들...로마서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등)를

자주 읽으세요

 

구원이 어떤 것인가 관심을 두세요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서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구약보다는 신약을 자주 읽으세요

 

네이버나 다음 회원이라면 블로그를 만들 수있으니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성경과 예수님에 대하여

혹은 그날 읽은 서신서나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한 것을 일기처럼 기록하는 것도 좋아요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도 좋지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자위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습관이 되면 그 피혜가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죄책감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에 이용될 수가 있고

결정적으로 사탄 마귀가 그것을 이용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하는 마음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사탄은 너무 교묘하게 접근한답니다.

우리의 사소한 생각을 틈타서 "괜찮아 다들 하는데 뭘" 하고 유혹(속임수) 하여서

결국 넘어지고 실패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하고

예수님을 등지게 하는 거죠

 

답변이 길어서 질문자가 이해할까 걱정이 되지만...

우리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께서 질문자를 붙드시고

미혹과 시험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 보세요^^

 

 2011/01/21 - 예수님의 피에 대한 뜻
2011/01/16 - 왜 하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고기를 먹이셨을까?
2011/01/16 - 악마(사탄)
2011/01/13 - 죄의 삯은 사망......
2010/12/16 -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2010/12/11 -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나요?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 예수는 태양신 호루스의 표절작이다.


라는 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죠^^

 

그리고 그것이 만일 사실이라해서 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묻고싶네요^^

어차피 세상에 진실보다는 거짓이 훨씬 더 많죠.

설은 설일 뿐이죠

 

성경이 거짓이라고 하기를 즐겨하는 이들에게는 솔깃하고

개독이라고 욕하는 분들은 고소하다고 박수 치며 환영하겠지만...

 

종교비평학자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이죠^^

 

하지만 분명한것은 아무리 예수를 부정하고 조롱한다고 해도

태양이 떠오르듯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없지요

 

님이 믿거나 말거나

개가 짓거나 말거나 기차는 철로를 힘차게 달리며 목적지로 가고

시간은 어김 없이 정확하게 한치의 오차 없이

지구의 멸망을 향하여 움직인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멸망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불시에

찾아 온답니다.

 

무늬만 기독교인인 종교인들과 자기 욕심과 탐욕에 절은 군상들이

성직자로 자처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그들로 인하여 예수님이 세상으로 부터 거절을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아니한다면...

인생 헛 살은것이 된답니다.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님에게 에수님은 어떤 존제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같는다면...

바로 그 순간 부터 님의 하루 하루 시간 시간들이 새로움의 연속이며

영원한 것을 알고 찾는 보석같은 날들이 될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사소한것에 목숨 거는 것보다는

영원한 진리를 아는 것이 더 지혜롭겠지요^^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제가 아는 교회에 목사청빙을 위해 청빙위원회가 구성됬는데
안수집사들제외 원로, 은퇴시무장로

몇분이모여 공개청빙이 아닌 추천으로 하여 결국 3명으로 압축됬는데
여기까지는 좋은데

3명에 대해 달랑 설교 한법을 듣고 아무 청빙정보도 없이 선택하라하네요

그래서 아는 집사님이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게재
정보를 교인들에게 요구 하였으나

오히려 장로님들이 이를 문제 삼아
당회를 무시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했다는 이유로 이는

치리대상이라 하는 대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답변  

 

아주 우끼는 곳이구만요^^

사실 개인적으로 개신교회의 문제에 관심 없지만

한때는 장로교단 소속 교회에서 신앙하던 옛 정을 생각해서 소견을 올립니다.

 

원래는 목사라는 제도가 복음과 성경과 맞지 않아요

예수님께서는 목사를 세운적도 없으시고

교단이나 노회나 당회를 만든적도 없지요

그저 인간들끼리끼리 모여서 자기들 세력 확장하고

영업전선에 유리하도록 세속적인 조직의 시스템을 도용한 거죠.

가장 시스템이 잘 되었고 조직적인 곳이라면 로마 카톨릭을 들 수 있지요

개신교는 바로 그러한 시스템에 반발하여 나온 루터와 칼빈에 의하여 신교로 구성된 것이고요

칼빈의 영향아래 세워진 것이 장로교단이지요

 

이런말 해봐야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개신교, 특히 개혁주의 장로교단및 다른 교단 교파들의 기독교 2천년 사는

로마 카톨릭의 교황주의자들과 로욜라가 창설한 "예수회"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왜곡된 거짓된 기록들에 영향을

받았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혹은 칼빈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이단자로 정죄 당하고

고문과 약탈과 화형으로 피 흘려 죽임 당한 수 많은 이들(도나티스트/재침례주의자 왈도파 등등...)이 있었지요.

 

이단사냥이라는 기치 아래 자신들의 조직과 세력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교리를 만들고 그 교리를 거부하면 강재적으로 물리적으로 폭력과 국가의 법을 이용하여 척결하였답니다.

이미 로마 카톨릭의 시스템과 성경에도 없는 성직자 제도에 깊이 물든 개신교는 어쩔 수 없이

 

카톨릭이 조작한 거짓된 교회사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로마천주교는 교황무오설과 하느님의 대리자가 교황이라고 숭배하고 있고

개혁주의에서는 칼빈이 개신교의 교황같은 권위와 숭배를 받고 있으며

루터교회역시 루터가 숭배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나물에 그밥들이라 그것입니다.

 

질문자께서 궁금해 하시는 답변을 해야 하는데 삼천포로 빠졌네요 ㅡ.ㅡ

 

암튼 질문자가 다니는 교회의 교단이 어디 소속인가요?

교단이나 소속된 노회에 이 문제를 설명하고 문제를 재기하시면 될것입니다.

 

머,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각 지역에 노회의 권위아래 개교회가 있기에

목사를 청빙하는 문제 역시 노회의 허가를 받아야할 것으로 알지만...

아마도 청빙에 따른 절차와 자격요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의 글로 보아서는 다니는 교회측에서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보이네요.

 

검색을 해보시면 좋은 자료가 있을 것이오나, 일단 제가 찾은 자료를 올려 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

 

아래 자료는 펌글입니다.

 

출처: http://www.guduk.or.kr/?doc=bbs%2Fgnuboard.php&bo_table=board_07_01&sselect=wr_name&stext=%B0%FC%B8%AE%C0%DA&ssort=wr_hit&sorder=desc&soperator=&page=1&wr_id=233

 

- 담임목사 청빙 공고 -
본 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부산노회 소속된 교회로서 현 담임목사님께서 30여년간의 목회를  정년으로 인하여 은퇴하심으로 후임목사을 청빙하고자 합니다.
1. 자격
 (1) 연령 : 40세~50세 전후
 (2) 학력 : 정규대학(4년제) 또는 본 교단 장신대 졸업 후 신대원 졸업자
 (3) 경력 : 목회 10년 이상 경력자
2. 제출서류
 (1) 자필이력서(최근 촬영 명함판 사진 1매 부착) --------- 1통
 (2) 본인 소개서(성장과정, 목회동기, 가족소개, 신앙관 등) --- 1통
 (3) 호적등본 및 주민등록등본 ------------------ 각 1통
 (4) 학위증 및 자격증 사본(해당되신 분) --------- 각 1통
 (5) 최종학교 졸업 증명서 --------------------- 1통
 (6) 최근 설교 녹음 또는 녹화 테이프 ----------- 1개
 (7) 목회계획 및 비젼에 대한 소견서 ------------ 1통
3. 제출기한
 2005년 12월 10일까지(당일 우체국 소인 유효)
4. 제출처
 602-528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3가 539
            대한예수교장로회 구덕교회
            (051) 255-1304(교회)
5. 참고사항
 (1) 서류는 등기우편으로만 접수합니다
 (2)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3) 청빙 후보자에게는 개별 통지합니다
 (4) 연락처 명기 바랍니다(주소, 전화번호, E-mail 등)
                  2005. 11. 18
          대한예수교장로회  구 덕 교 회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위원장  김 순 욱 장로

 

 

참고로 저는 위 자료의 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답니다 ㅡ,.ㅡ 

 

2011/01/21 - 성인들의 신화-프란시스와 어거스틴 (필독)
2011/01/19 - 이단들이 "이단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2010/12/01 - [특별기고] 비성경적인 국내 주요교파의 목사제도 1~5
2010/12/01 - [종교] 목사제도와 신학교 시스템의 문제
2010/11/30 - 오늘날과 같은 목사제도 언제부터 생겨났나?. - 김형희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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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구원에 관해서 세 가지 질문을 해봅니다.

 

1)구원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살아 있을 때 얻을수 있는 신앙의 결과입니까?

 

2) 죽고나서 얻을 수 있는 신앙의 결과입니까?

 

3) 그리고 구원인 있다면 창세기

이후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까?





답변  

 

이 질문에 답은 곧 "믿음으로 얻는 의" 입니다.

구원이란 살아있을 때의 시작이며 동시에 결과이기도 합니다.

죽은 이후에의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 이후에 어떠함이란 지금 우리가 구원의 길에 서있지 아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지금 내가 영원한 생명이신 그 분과 함께 동행하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가 답하셔야합니다.

 

이것이 먼저 확인 되지 않는다면

죽음 이후의 결과에 대하여 논할 필요가 없지요

 

또한 영원한 생명의 주 예수님과 함께 성령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죽음 이후를 염려하거나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삶을 소중하고 새롭게 얻은 선물로 알기에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님은 어느쪽에 계시는지요

 

이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TAG 구원, 영생




질문  

 

(문) 이교도는 무조건 지옥행인가요? 예를 든다면 성철스님도 해당이 되겠네요.

 이런 예수님를 모르나 선한 사람들, 예수 이전의 사람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나요?

 구약에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했으며"라는 귀절이 있는데, 저는 납득할 수가 없네요.

 정말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불공정하십니까?





답변  

 

이교도건 본교도건 예수님 밖에서라면 구원은 없습니다.

다른말로 종교적인 것으로 어림 없다는 것입니다.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그리스도교든 정교회든 성공회든 장 감 성 침 기하성이든 간에 말이죠.

 

구원은 종교적인 어떤 것하고도 상관 없습니다.

질문자나 우리들도 사실은 이방인들입니다. 유태교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지요.

그러나 그 선택받은 유태민족이 아주 극 소수의 남은자를 빼고는 전부 다 배도하엿습니다.

하물며 이방인인 현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이라고 얼마나 다를것 같습니까?

 

예수 이전이냐 이후냐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왜 그런것에 신경을 쓰나요?

당장 님의 구원에 대하여 신경쓰시고 나누시는것이 더 지혜롭겠지요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올립니다.

 

참고하시고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가 살펴 봅시다.

 

 

<예레미야2장> [흠정역]

1.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치며 말할지니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를 기억하며 네 젊은 시절의 친절과 네 정혼한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그때에는 네가 씨 뿌리지 않은 땅 곧 광야에서 나를 따랐느니라.
 3. 이스라엘은 주에게 거룩한 자요, 그의 소출의 첫 열매였으니 그를 삼키는 자는 다 실족하고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주가 말하노라.
 4. 오 야곱의 집아, 이스라엘의 집 모든 가족들아, 너희는 주의 말을 들을지어다.
 5.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법을 보았기에 나를 떠나 멀리 가고 허무한 것을 따라 걸으며 허무한 자가 되었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의 땅, 가물고 사망의 그늘진 땅, 아무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아무도 거하지 아니하던 땅을 지나가게 하신 주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풍요한 나라로 데려가 그곳의 열매와 그곳의 좋은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거기에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유산을 가증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주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고 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목양자들도 내게 죄를 짓고 대언자들은 바알을 힘입어 대언하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따라 걸었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변론하고 너희 자녀들의 자녀들과 변론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10. 깃딤의 섬들을 지나가서 보고 게달에 사람을 보내어 부지런히 살펴서 이런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
 11. 어느 민족이 자기 신들 곧 신이 아닌 것들을 바꾸었느냐? 그러나 내 백성은 자기들의 영광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과 바꾸었도다.
 12. 오 하늘들아, 너희는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몹시 두려워할지어다. 너희는 심히 황폐할지어다. 주가 말하노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렸고 또 스스로 물 저장고들 즉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저장고들을 팠느니라.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그가 집에서 태어난 노예냐? 어찌하여 그가 노략을 당하였느냐?
 15. 젊은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울부짖고 크게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매 그의 도시들이 불타서 거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들도 네 정수리를 상하게 하였으니
 17. 주 네 하나님이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버림으로 너를 위해 이것을 얻지 아니하였느냐?
 18. 이제 무슨 까닭으로 네가 이집트의 길로 가서 시홀의 물을 마시려 하느냐? 혹은 무슨 까닭으로 네가 아시리아의 길로 가서 그 강의 물을 마시려 하느냐?
 19. 네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바로잡고 네 타락함이 너를 꾸짖으리라. 그런즉 네가 주 네 하나님을 버린 것과 네 속에 나를 두려워함이 없는 것이 악한 일이요, 쓰라린 일인 줄 알고 주의하라. [주] 만군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20. 옛적에 내가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매 네가 이르기를, 내가 범법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 네가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돌아다니며 창녀 짓을 행하는도다.
 21. 그럼에도 내가 너를 귀한 포도나무 곧 온전히 올바른 씨로 심었거늘 네가 내게 이방 포도나무 즉 변질된 초목이 됨은 어찌된 까닭이냐?
 22. 네가 천연소다로 네 몸을 씻고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불법이 여전히 내 앞에 표시되어 있느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23. 어찌 네가 이르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으며 바알들을 따르지 아니하였다, 할 수 있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고 네가 행한 바를 알라. 너는 길을 달리는 빠른 암낙타요,
 24. 광야에 익숙한 야생 암나귀 곧 자기 쾌락에 빠져 바람을 맡으며 킁킁대는 암나귀니라. 그것이 이렇게 행할 때에 누가 그것을 돌이킬 수 있겠느냐? 그것을 찾는 모든 자들은 자신을 지치게 하지 아니하리니 그것의 달에 그들이 그것을 만나리라.
 25. 네 발을 억제하여 벗은 발이 되지 않게 하며 네 목을 억제하여 목마르지 않게 하라, 하였거늘 너는 말하기를, 소망이 없도다. 전혀 없도다. 내가 타국인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들을 따라가리라, 하였도다.
 26. 도둑이 들키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 같이 이스라엘의 집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들의 통치자들과 그들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대언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느니라.
 27. 그들이 나무줄기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하고 돌에게, 너는 나를 낳았다, 하였도다. 그들이 자기 등을 내게로 돌리며 자기 얼굴은 내게로 돌리지 아니하였으나 고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 그러나 네가 너를 위하여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네가 고난을 당할 때에 그들이 너를 구원할 수 있거든 일어나게 할지니라. 오 유다야, 네 신들이 네 도시들의 수만큼이나 되는도다. 
 29.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변론하고자 하느냐? 너희가 다 내게 범법을 행하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30. 내가 헛되이 너희 자녀들을 쳤나니 그들이 바로잡는 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의 칼이 멸망시키는 사자같이 너희의 대언자들을 삼켰느니라.
 31. 오 세대여, 너희는 주의 말을 주의하여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된 적이 있었느냐? 어둠의 땅이 된 적이 있었느냐? 어찌하여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가 주(主)니 다시는 주께 가지 아니하리이다, 하느냐?
 32. 처녀가 자기 패물을 잊겠으며 신부가 자기 의복을 잊겠느냐? 그러나 내 백성은 셀 수 없는 날 동안 나를 잊었도다. 
 33. 네가 어찌하여 사랑을 얻으려고 네 길을 다듬느냐? 그러므로 네가 또한 사악한 자들에게 네 길들을 가르쳤으며
 34. 또 네 옷자락에는 가난하고 무죄한 자들의 혼이 흘린 피가 있나니 내가 은밀한 조사를 통해 그것을 찾아내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에서 찾아내었느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내가 무죄하므로 그분의 분노가 분명히 내게서 떠나리라, 하거니와, 보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므로 내가 너와 변론하리라.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꿀 정도로 들떠서 나다니느냐? 네가 아시리아로 인해 부끄러워한 것 같이 이집트로 인해서도 부끄러워하리라.
 37. 참으로 네가 두 손을 네 머리에 올린 채 그를 떠나 나가리니 네가 신뢰하는 것들을 주가 거부하였으므로 네가 그들로 인하여 형통하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이 이럴진데...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Posted by 비회원




질문  


(문) 교회에서는 근친상간을 금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모두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라면 처음에는 다들 근친상간이 아니었을까요?




답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의 일입니다.

왜 이러한 것에 괸심을 두는걸가요?

 

정작 집중하고 관심 두어야할 것은 남의 죄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죄 문제입니다.

 

이미 죽은지 수천 수백년 된 조상들의 죄 문제나

그들의 구원 문제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자신의 죄 문제와 죄들을 사하는 문제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문제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나간 시대의 조상들이 구원을 받고 안받았다던가

근친상간이니 아니니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이 잘못이라면 우리는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맘에 들거든 따라 하던가 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양심이(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한 양심이라해도...) 과연 현실적으로

근친 상간을 잘했다고 칭찬할 수는 없지요?

그것이 죄가 아니니까 옛 조상들도 했으니까 괜찮다고 권장할 수는 없지요?

 

아마도 안티분들이 개독교를 비평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그럴듯한

논리로 무장해서 들고 나오는것인줄 압니다만...

 

그래서 머가 어쨌다는 걸가요?

 

그것이 흉이라고 비아냥 대는 이들은 그럼
완전하고 흠 없는 의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요?

다 별 수 없는 죄인들이랍니다.

 

개독이라고 욕하는 그들이나 욕 들어 처먹는 그들이나

하늘 아래 땅 위에선 별수 없는 약한 존재들이요

구원 받아야할 존재들이며

용서 받아야할 대상들이라 그런 것이죠.

 

질문자께서 이러한 것이 신경쓰기 보다는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들을 대신 짊어지시고 대속 제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고 다시 사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 구원하신 은혜를 믿음으로 믿는것,

믿어지는 것이 님의 영혼과 남은 인생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소한것들 별로 알 필요도 없는 문제 때문에

아까운 시간과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낭비하지 말고

이 큰 구원을 정확하게 알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남은 인생을 복되고 가치있게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것이 더 귀하잖아요^^

 

성경을 많이 읽으세요

특히 신약의 복음서와 서신서들을 자주 매일 꾸준히 읽으세요

그것이 성당이나 교회나 종교적으로 의무적으로 다니는 것보다 가치있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이나 교단이나 조직안에 계시지 않아요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경을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시죠

사람들의 가르침은 부정직 합니다.

그러나 기록된 성경 말씀은
이제 누구든지 한글만 읽을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답니다.

 

과거 중세 암훅시대에는 라틴어로만 성경이 씌여졌기에

일반 사람들에겐 까만것은 글씨요 흰것은 종이였지요

 

그러니 교황이나 성직자들이 아니고선 말씀을 알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네요^^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그러한 암흑시대속에서

루터를 통해 독일어로 성경이 번역 되었고

틴테일을 통해 영어로 성경이 번역 되었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급속히 하나님의 말씀이 온 유럽으로 퍼졌고

급기야 오늘 한국어로까지 번역되기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알곡이 자라는 만큼 그 이상으로 가라지들이 번성하여서

온갖 종교적인 것들과 성직자제도로

하나님의 말씀이 조직적으로 왜곡되며

방해를 받았고

지금도 일반 사람들에게 성경은 어려운 책이며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나 이해할 것이라고 속아 온것이죠

 

방대한 논문과 신학자들의 괘변
그리고 엄청난 분량들의 온갖 주석들로 도배를 하여서

성도들이, 사람들이 성경을 매우 어렵고 우리같은 보통 사람에겐
금서같이 여겨질 지경이 되었으니...

 

개독먹사로 욕먹는 자들과 비록 겉으론 바른 것 같지만

여전히 엉터리로 썩을 전통이나 유전들을 말씀보다 더 귀하게 믿는 이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혼동가운데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도록

교활하게 목사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대리자운운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성직자들의 교묘한 방해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방해를 받아 오늘날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혼미한 가운데 "복음"과 <바른 진리> 로 갈 수 없도록
잡다한 것들로 문제삼아서

구원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랍니다.

그 훼방하는 것들이 경건이라는 이름 교회라는 조직 목사라는 권위

봉사와 섬김이라는 것들로 나오기에 사람들은 깜빡 깜빡 속아 넘어가지요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를 찾지 못하도록 그렇게 조직적으로 방해를 하고 있답니다.

 

님이 제 말을 부디 잘 이해하시기를 바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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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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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문  현재 기독교내에서의 십의 일조를 헌금으로 드리는것이 성경적인가요? 십일조를 드리는것이 한국에만 있는것이라고도 하는데요 레위지파를 위한 11지파의 십의일조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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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겠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십계명에 있지요 근데 그 십계명은 모세를 통하여 시내.....

 질 문  일천번제 헌금 드리면서 행위라는 생각과 율법이라는 것들은 생각 해보지 않했지요 일천번 헌금을 일년동안 드리면서 우리 남편을 주님의 전으로 불러 주시길 기도 드렸죠.....

십일조 폭로 더보기 : http://cafe352.daum.net/_c21_/bbs_list?grpid=1BjrG&mgrpid=&fldid=Ni27  Re: 차라리 제가 직접.....

일천번제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왕상 3:4) (왕상 3:4, 개역)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질 문  영은 뭐고 육은 무슨 뜻일까요?  답 변 영이나 육에 대하여 관심 두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을 두세요^^ 복음을 알면 다 이해가 되는데요.... 정.....

'안식일 준수'란 '모세율법'에 매인 한심한 자들에게 --- 작성자 : esus 2011-01-27 17:03:32 조회: 70 안식일과 안식 어떤 안식인가? 육신의 안식과 영.....

형제 사울, 형제 바울 이반 형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머리말 새로운 신약교회 사관을 제언하면서 오늘 내가 이 책을 쓰게 되기까지는 두 분의 영향이 컸다. 한분은 나를 미국 침례신학 대학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주선하.....

|이전| 왜 침례 성도는 프로테스탄트가 아닌가 (Why Baptists Are Not Protestants) 기독교와 관련된 사람들은 대개 세 신앙 그룹 중 하나로 분류되어집니.....

제20장 신약교회 고수주의자 지금까지의 교회 역사라고 하면 주로 현재 커다란 대동맥을 이루어오고 있는 로마 카톨릭교회나 희랍 정교회와 관계된 역사만을 취급해 왔다. 그런데 교회.....

글쓴이: 이진모 형제 출처: http://www.bbckorean.org/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627:7777&cat.....

 질 문  히브리서 7장 연구 4 결론 히브리서 7장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십일조란 단어 입니다. 신약(십자가 사역 이후) 을 통해 단 한번 거론돤 십일조가 히브리서 7장에.....

 질 문  한 번 누가 성경적으로 대답하실 분 없나요...... 이 사람이 천국에 갔는지 안갔는지 모르니까........ 이것은 명확한 답변이 될 수 없으니까 명확한 기준은.....

 질 문  (히 7: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히5:6 (히 7: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

 질 문  저도 그렇제만 제 주의에 많은 신앙을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 가지각색 신앙을 하고 있고요... 수요, 철야, 주일예배 및 각종 모임 등 빠지지 않고 열심히.....

 질 문  십계명에서 말하면 이웃이란 것은 이웃을 사랑하거나 부모를 사랑하고 여기에서 이웃이란 것은 예를 들면 (연예인,동료친구,남자친구,여자친구,연예인 모 펜클럽,동호회.....

 질 문  이 말씀에 지지하시나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또 그가 내게 이르되, 이 책의 대언의 말씀 들을 봉인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게 두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두며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게.....

 질 문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이란 책을 통하여 천주교와 기독교의 교리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해 주실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서문 I. 평신도들이 개척한 교회 II. 성경적 교회관 예배당은 교회가 아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은 성경적이 아니다. 목사는 학.....

출처: http://cafe325.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HjPZ&fldid=NYku&contentval=002iuzzzzzzzzzz.....

질 문- 찬양사역자가 되고 싶어요 찬양사역자가 되는 길에 대해 궁금합니다. 찬양사역자가 되려면 노래도 잘해야 겠지만 신앙심도 타에 모범이 되어야 할것 같은데요 ...늘 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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